지난해부터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이슈를 한꺼번에 삼켜버린 두 가지 이슈가 있다. 바로 소재·부품·장비 관련 일본의 수입규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이에 더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데이터 댐, 네트워크, 인공지능 등 새롭게 부상하는 분야 기술의 국가적인 대비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방사선·플라스틱·에너지·이산화탄소 등 인류의 지속가능을 위한 문제 해결도 절실하다. 현재진행형인 이들 과제를 푸는 열쇠는 결국 과학기술이 쥐고 있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지난 1960년대 후반 기업체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진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악한 상황 속에 세워졌다. 1980년대 국내에서 석사를 졸업한 이공계 수재들이 해외 유학 후 돌아와 출연연과 대학에 자리 잡으면서 연구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출연연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에 힘입어 포항제철을 설계했고 반도체 기술개발 등 국가가 필요로 했던 굵직한 성과를 내어 산업체 이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1990년에 이르러 대학과 산업계가 스스로 연구능력을 갖추고 국가 연구개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출연연의 정체성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외환위기 사태로 출연연의 강제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출연연의 국가 연구개발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전체 국가 연구개발 사업비의 30%를 사용하는 출연연을 향한 비판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연구비 투입 대비 성과 부족, 생산성 낮은 중복 연구, 국가 문제해결능력 부족 등 전반적인 경쟁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출연연이 가진 장점은 분명하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1만여명 이상의 박사급 연구원이 대전 대덕단지에 집중돼 있어 융합연구가 수월하며 연구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분야에 필요한 새로운 연구개발이 가능하다.
최근 들어서는 모든 출연연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정하고 국가적 임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연구원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도 확산하고 있다. 앞으로 출연연은 연구원 각자가 프로의식을 갖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 이를 해결하는 ‘퍼스트 무버’형 연구를 지향하고 연구 결과를 국민과 사회에 환원하는 연구소가 돼 국가가 필요한 기술을 선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25개 출연연의 역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40년 이상이고 50년이 넘는 기관도 있다. 이제 장년기에 들어선 것이다. 안정감과 무게감이 느껴져야 할 시기임에도 여전히 외풍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출연연의 자발적 연구환경을 보장해준다면 그리고 국민의 신뢰가 담보된다면 출연연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혁신하는 출연연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