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산산조각이 나면'…詩人 정호승, 자신의 詩를 말하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7년 만의 신작 산문집 출간해

'수선화에게' '서울의 예수' 등

시에 얽힌 이야기 살뜰히 담아

정호승 시인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 카페에서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정호승 시인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 카페에서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독재 시절, 세상은 어둡고 고통스러웠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우는 이가 많았다. 시대의 눈물을 누군가는 닦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되어 시로써 시대의 눈물을 닦기로 마음 먹었다. 한 끼 밥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추상과 관념의 언어는 배제하고, 편하고 쉬운 우리 말을 품었다.

그렇게 시를 쓴 세월이 48년이다. 그 사이 13권의 시집을 냈다. 그 안에 담긴 시는 1,000편에 달한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의 시집은 출간될 때마다 매번 독자들에게 위안이 됐고, 희망이 됐다. 올해 일흔이 된 시인 정호승의 시력(詩歷)이다.




정호승 시인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 카페에서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정호승 시인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 카페에서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시인 정호승이 그간 창작한 시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산문집을 냈다. 책 제목은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로, 1,000편의 작품 중 창작 과정에 얽힌 사연을 독자들과 꼭 공유하고 싶은 60편을 엄선해 시와 사연을 짝 맞춰 담았다.

정호승은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올해 제 자신도 모르게 일흔이 됐다”며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 의미로 정리해야 할 것은 정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정호승은 “시와 산문은 장르 자체는 별개지만 서로 하나의 영혼과 몸을 이룬다. 문학이란 이름으로 하나”라며 “시와 그 시를 쓰게 된 계기를 같은 책에 묶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늘 했었고, 그런 생각의 결과가 이 책”이라고 설명했다. 책에는 자신의 인생과 신에 대해 원망했던 일, 반려견에게 화를 내고 후회했던 사건, 가계부에 적힌 어머니의 시를 보고 놀랐던 기억 등 크고 작은 삶 속 이야기가 시로 승화된 과정이 담겨 있다.





정호승은 산문집에 엄선해서 실은 60편의 작품 중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늘 위로하고 위안해 주는 단 한 편의 시로 ‘산산조각’을 꼽았다. 그는 “마지막 4행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를 가슴에 품고 오늘을 살고 있다”며 “많은 독자도 마지막 4행을 통해 자기 삶에 큰 힘과 위안을 얻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호승은 “이 시대의 한 시인으로서 단 한 편의 시라도 다른 사람의 가슴에, 삶에 힘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인가”라고 덧붙였다.

정호승은 이번 산문집의 제목과 연관된 ‘수선화에게’ 역시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수선화에게’는 ‘산산조각’과 반대로 도입 3행 ‘울지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가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가서 닿는다. 정호승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며 “외롭게 태어나고 죽는 존재임을 이해하고 나면 외로움을 긍정하며 살 수 있다”고 말했다.



2년 후면 등단 50년을 맞게 되는 정호승은 앞으로도 계속 눈물을 닦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대신 이제는 시대의 눈물을 닦는 역할은 다른 이들에게 내어주고, 인간 존재의 눈물을 닦아주는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정호승은 “이제 인간을 성찰하고, 존재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시를 쓰다가 시인으로서 삶을 마치게 될 것 같다”며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건 죽음이 찾아왔을 때 ‘아직 써야 할 시가 내 가슴 속에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 순간 ‘나 이제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가슴 속에 있는 시를 빨리 다 쓰고 싶다”고 웃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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