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지난 5일 북한에 대한 분석 역량을 강화하려면 2021년 내로 ‘북한정보 AI·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추가 예산 204억 원을 국회에 신청했다. 이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는 11일 예산 심사 후 50%를 감액한 102억 원을 증액했다. 이 과정에서 통일부가 통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예산을 신청했다며 예산 심의권을 무력화하는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상 행정부에서 기획재정부에 관련 예산을 신청하면 기재부에서 심의를 마치고 정기국회에 ‘정부안’ 형태로 예산을 제출한다. 이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관련 예산을 심사한다. 하지만 통일부의 ‘북한 AI 분석’ 사업은 지난 5일 기재부 심의를 건너뛰고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가 끝날 무렵 서면질의를 통해 제출됐다. 외통위 소속 위원들은 다음날인 6일에 서면질의 책자를 통해 추가된 예산 증액 요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외교통일위원회 당정협의에 참여한 바 있다. 이날 당정협의에 참여했던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장관은 이날 ‘북한 AI 분석’ 예산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통일부가 급조한 신규사업에 2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증액 추진하면서도 외통위 야당 의원들에게는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었다”며 “통일부의 즉흥적이고 주먹구구식 업무행태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통일부가 태영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는 ‘북한 AI 분석’ 사업의 시급성을 이유로 예산을 증액했다고 적혀 있다. 북한 관련 가짜뉴스에 신속대응하고 국민들의 북한 정보 수요 증대에 부응하려면 정세분석의 필요성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자료 축적이 중요한 빅데이터 사업의 특성상 빨리 구축할수록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까지만 해도 통일부는 종합감사 자료에서 북한 분석 역량을 위한 내년도 예산을 올해 대비 총 18.9%나 ‘셀프 감액’해 신청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가 깎기도 전에 알아서 ‘북한 경제사회 심층 정보 수집’의 내년도 예산안을 5% 줄이고, ‘정세분석 역량강화’ 내년도 예산안은 13.9% 감액한 것이다. 불과 3주 만에 스스로 감액했던 ‘정세분석 역량강화’ 관련 예산을 ‘AI·빅데이터’ 사업이란 명목으로 204억 원을 추가 제출한 셈이다.
태 의원은 이를 두고 “사업의 시급성과 별개로 국회 예산 심의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이런 오만한 행태가 향후 재발해선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혜린·김인엽기자r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