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감정의 격동기다. 당시의 시대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재미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80년대를 무겁지만 않게, 웃음으로 양념해 감동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정치 이야기가 아닌, 사람 냄새가 진국인 영화 ‘이웃사촌’이다.
영화는 1985년 자택격리를 당한 이웃집 가족과 그들을 도청해야 하는 좌천위기 도청팀장의 이야기를 그린다. 해외에서 오랜만에 입국한 야당 총재 의식(오달수)은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혔지만 음모 세력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 이는 국정원의 소행이었고, 의식을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다시 미국으로 떠나게 한 뒤 여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 목적이다.
도청팀장 대권(정우)는 자택 격리된 의식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청하라는 미션을 받는다. 그리하여 의식의 옆집 이웃사촌으로 잠입하고, 도청으로 만난 두 사람은 조금은 특별한 이웃사촌이 되어간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가족들의 소리와 행동을 감시하면서 새로운 비밀들을 하나씩 알게 된다. 의식을 경계하던 대권은 그의 가정적인 모습과 정치적 신념에 공감하고, 색안경을 벗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한다.
‘이웃사촌’의 전반적인 톤은 이환경 감독의 전작 ‘7번방의 선물’과 같은 휴먼 코미디다. “‘7번방의 선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이환경 감독의 말처럼 ‘이웃사촌’은 가족의 사랑을 이웃사촌들의 우정과 사랑으로 확장했다. 80년대 민주화가 꿈틀거리는 시기, 섞일 수 없는 두 사람이 이웃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은 마치 동화이자, 판타지 같다. 평범한 그 시대 이웃들처럼 담벼락, 대문, 난간을 거쳐 감정은 점차 허물어진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만큼 영화는 정치색을 살짝 드러내기도 한다. 극 중에서 대권은 어린 아들에게 “왼손을 쓰지 마라. 네가 좌파 빨갱이냐”며 나무라고, 가수 나미의 ‘빙글빙글‘이 금지곡이 된 것 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시대상을 그대로 재현한다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부담없이 관람할 수 있겠다.
사실 각본이나 연출에 신선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반부까지는 평범한 이웃의 일상을 담아 휴먼 코미디 장르의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후반부터 급선회한다. 민주주의의 비장한 승리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뻔한 캐릭터와 낡은 스토리, 그리고 전반적으로 호흡이 늘어지면서 1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다.
뻔함을 상쇄시키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정우는 시대극에 어울리는 그만의 차진, 구수한 매력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웃겼다가, 울렸다가 감정의 진폭이 크지만 과장되지 않고 설득력 있게 대권의 얼굴을 표현한다. 도청팀원 동식(김병철), 영철(조현철)의 티키타카는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감초 역할을 잘 담당했다. 국가안보정책국 김 실장 역을 맡은 김희원은 주특기를 발휘해 ‘나쁜놈’을 비열하게 그려냈다. 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