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회생·파산 사건 통계를 공개하는 것은 기업을 위한 것입니다. 통계가 마련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주로 어떤 기업이 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정형식 서울회생법원장은 1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도산 절차 데이터베이스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도산 절차의 데이터베이스화는 법인과 개인의 회생·파산 사건 관련 자료를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작업이다. 정 법원장이 지난해 2월 서울회생법원장으로 취임한 후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업이다.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개별 사건에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 법원장의 목표다.
가장 먼저 데이터베이스화가 이뤄진 분야는 개인 파산이다. 서울회생법원은 파산관재인 보고서의 ‘이폼(e-Form)화’를 통해 지난해 접수된 개인 파산 사건 통계를 산출했다. 파산관재인 보고서는 파산자의 남은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변제하기 위해 산출한 ‘환가금’을 배당하는 파산관재인이 작성하는 사건 관련 문서다. 신청자의 연령, 성별, 부동산 소유 여부 등이 데이터 산출 항목에 포함됐다. 개인회생 사건에 관한 통계 산출도 시작됐다.
법인 회생과 법인 파산 사건의 세부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그동안 법원은 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는 기업의 업종, 종사자 수, 자산, 부채, 청산·계속 가치, 인수합병(M&A) 여부, 파산 신청 직전 연도의 재무 상태 등을 정기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해오지 않았다. 현재는 월별로 접수·처리된 사건 수만 집계되고 있다. 이번 검토로 서울회생법원이 다루는 법인 회생·파산 사건은 보다 자세하게 분류돼 법인과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법인 사건 데이터베이스화는 서울회생법원과 대법원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이 함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대담=김정곤 사회부장 mckids@sedaily.com
정 법원장은 법인 회생·파산 사건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해관계자들의 양보를 꼽았다. 그는 “회사가 법원에 올 정도면 채권자들도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그러니 채권자들이 채무자(법인)와 서로 양보해 합의점을 찾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인 파산도 마찬가지다. 채무자든 채권자든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을 찾으려는 생각에서 파산을 신청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사자 간 잘잘못을 가리는 민형사 사건과는 본질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회생법원은 경기 부진에 따른 회생·파산 신청이 계속 늘어나 도산전문 법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약 3년 전인 지난 2017년 3월 출범했다.
정 법원장은 최근 법인 파산 신청이 급증하는 배경에는 올해 초부터 확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이 크다고 봤다. 실제로 1월 25건이던 법인 파산 신청이 9월에는 44건으로 급증했다. 정 법원장은 “법인 파산 신청이 증가한 데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며 “(영향이 본격화되는) 내년 이후가 더 걱정”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개인들의 파산 신청이 먼저 늘고 기업들은 견딜 만큼 견디다가 결국 파산을 신청하기 때문이다.
법인 회생 사건도 2월부터 10월까지 접수된 133건 중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를 회생 신청 원인으로 기재한 기업이 32건으로 약 24%를 차지했다. 32건 중에서도 의류·잡화 제조 등 패션 관련 업체들의 신청이 10건에 달해 다른 업종보다 타격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점이나 커피전문점의 회생 신청이 3건으로 뒤를 이었다. 정 법원장은 “법인 파산 사건은 법인 회생 사건처럼 분류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법인 회생 사건과 비슷한 분포를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인 파산 신청뿐 아니라 개인 파산 신청도 최근 크게 늘었다. 대법원이 9월 발표한 ‘2020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개인 파산 사건 접수는 12년 만에 증가했다. 1월부터 9월까지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 파산 신청만 해도 8,000건에 가까울 만큼 경제적 어려움으로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정 법원장은 개인 파산 신청 증가는 법인 파산 신청과 다르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개인 파산 신청 증가세는 단순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악화만이 원인이 아니라 개인 파산 신청이 수월해지도록 제도를 개선한 법원 시스템의 영향도 있다는 것이다. 정 법원장은 “올해 2월부터 기존 29가지였던 개인 파산 신청 서류가 14종으로 간소화됐다”면서 “이전에는 개인들이 높게만 느끼던 파산신청의 벽을 절반 이하로 낮춘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법원장이 “법원에 파산 신청이 많이 들어온다는 것을 무조건 나쁜 지표로만 볼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면책 제도를 두고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 대해 정 법원장은 제도의 실효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면책은 개인 파산자에게 채무 변제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제도다. 정 법원장은 “파산 사건을 접하기 전에는 ‘돈을 빌렸는데 일정 부분을 갚지 않아도 된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파산 사건을 처리해보니 파산자가 재기를 못하도록 놔두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는 “파산자가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멀리 보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 파산자에게 찍히는 낙인 효과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정 법원장은 “파산한 개인이 갖지 못하는 직업이 약 220가지에 달한다. 하다 못해 ‘전통 소싸움의 소 주인’ 같은 직업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면책으로 복권되더라도 파산 후 복권될 때까지 제약이 많고 파산했다는 사실 자체로 인한 낙인 효과 때문에 사회생활에 불편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개인 파산의 낙인 효과는 통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개인들이 쉽게 파산을 신청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개인 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파산의 어려움에 직면한 시점에서 3년이 지나서야 법원을 찾아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파산 신청 과정이 복잡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파산 선고로 인한 낙인 효과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산자에 대해 부도덕하다는 편견을 갖기보다 낙인 효과를 겪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 정 법원장의 생각이다.
정 법원장은 회생 사건과 파산 사건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기보다 서로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회생 신청으로 접수된 사건이더라도 법원이 판단하기에 파산 사건으로 처리하는 것이 낫다면 파산 사건으로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취지다. 정 법원장은 “예전에는 회생 재판부와 파산 재판부가 따로 있었지만 이제는 한 재판부가 두 종류의 사건을 모두 담당한다”며 “회생에서 파산으로, 파산에서 회생으로 사건 종류를 바꾸는 것이 사건 당사자나 법원 모두에 이익이 될 때 편리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정 법원장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언급된 지적에 대해서도 답변을 내놨다. 지난달 20일 법사위 국감장에서는 “개인이나 법인 이름만으로도 공고 검색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건번호를 입력해야만 검색이 가능한 현 시스템을 비판하는 취지였다. 정 법원장은 “채권자들의 편의를 위해 공고 검색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제3자가 단순 호기심에 채무자의 이름이나 법인 상호를 입력해본다면 채무자로서는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대법원 법원행정처와 협업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리=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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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서울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학원 법학 석사 △1985년 사법고시 27회 △1988년 사법연수원 제17기 수료 △1988년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 △1995년 서울지법 판사 △2000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2003년 청주지법 부장판사 △2007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2012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2019년 서울회생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