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조선업계가 또 한번 싱가포르 샘코프마린과의 해양플랜트 수주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발주처인 에퀴노르사가 샘코프 자회사인 세반SSP가 제안한 설계 방식을 추가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해양 수주절벽으로 구조조정 우려마저 제기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 에퀴노르가 북극해에서 추진하는 위스팅 해상유전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될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및 하역설비(FPSO)의 선체 설계연구에 세반SPP의 원통형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반SPP는 2018년 샘코프에 인수된 엔지니어링 회사다. 위스팅 프로젝트의 추정 매장량은 4억5000만배럴로, 가치는 54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프로젝트 대주주였던 오스트리아 국영 정유회사 OMV가 원통형을 배제하면서 선박형에 경험이 풍부한 국내 업체들의 수주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OMV가 지난해 에퀴노르에 지분을 넘기면서 원통형이 다시 고려되며 채택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설계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년 2·4분기에 내려질 예정이다. 한성종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센터장은 “혹독한 북극해 환경을 고려해 선박형보다 안정성이 더 좋은 원통형을 채택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설계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한국 조선사가 과거처럼 싱가포르에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노동시장 개방으로 인도·말레이시아·파키스탄 등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샘코프마린 직원의 70% 가량은 인도·파키스탄·인도네시아 등 비(非)현지인이다. 업계에서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인건비 차이가 6.5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조선사 수익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인 인건비에서 확보한 경쟁력으로 저가 입찰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 조선사가 비싼 입찰 가격을 상쇄할 만큼 기술 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라는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가 조선소를 통합·대형화하면서 생산 효율성을 높여가고, 기술 격차도 거의 없어졌다”며 “최근에는 건조 경험까지 축적하면서 한국을 밀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 3사는 당장 내년부터 해양플랜트 일감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상선 부문으로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상선을 해양플랜트 건조장에서 지으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추가 수주 없이는 협력업체를 포함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