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나는 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종 바이러스의 여파는 상당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인구와 맞먹는 5,000만 명 이상이 감염됐고, 12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면서 ‘운이 나쁘면 나도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한 번 쯤 들었을 것이다. 이번 한국건축문화대상 계획건축물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HOPEspital: 일상으로 스며든 병원’은 이처럼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만연한 시대의 대형병원 역할을 고민한 작품이다.
병원은 왠지 모를 ‘낯섦’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하얀 벽과 차가운 복도, 그리고 소독약 냄새로 대표되는 병원의 이미지는 결코 유쾌하다고 할 수 없다. 특히 각종 첨단 장비로 가득 찬 거대한 대형병원은 더욱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병원은 ‘치료’와 ‘감염 방지’라는 기능에 충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각종 병균에 노출되기 쉬운 장소인 만큼 이용자의 안전에 초점을 두고 모든 공간이 설계됐는데, 결과적으로 일상에서 유리된 폐쇄적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일상으로 스며든 병원’은 ‘병원도 하나의 일상의 공간이 될 수 없을까’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병원의 기능적 측면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지역사회와 공간을 공유한다면 병원이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또 하나의 일상 공간으로 편입돼 지역사회와 공생할 수 있다고 작품은 제안한다. 작품을 만든 숭실대 건축학과 나선주(5학년) 씨는 “병원은 폐쇄적이고 갇힌 공간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데, 이런 이미지의 병원을 어떻게 지역사회에 개방하며 연계를 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며 “병원과 지역사회가 서로 동등한 존재로서 서로 상호보완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순천향대병원을 모티브로 한 ‘일상으로 스며든 병원’은 교환-공유-연결-개선의 네 가지 단계를 통해 병원과 지역사회를 연결했다. 첫째 단계는 ‘교환’은 병원 밖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병원시설을 병원 밖으로 빼내는 단계다. 수술실이나 격리병동 등 안전이 최우선이 되는 시설은 병원 내에 둬야 하지만, 재활치료 시설 등 지역사회와 교류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은 외부로 옮겨냈다. 재활치료에 대한 인식이 ‘병원에서 받는 치료’가 아니라 ‘동네 공원에서 하는 산책’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병원 내에 위치한 체육시설을 지역사회에 개방해 지역주민도 쾌적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게끔 했다. 두 번째 단계인 ‘공유’에선 병원 대지를 합필하고 차도를 지화화해 병원 주변의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지역사회 내에서 자주 쓰이지 않던 ‘뒷공간’과 앞 단계인 교환을 통해 병원과 지역사회가 만나게 되는 공간에 병원과 지역사회를 위한 생활 SOC 시설도 조성할 수 있다.
세 번째 ‘연결’ 단계에서는 세 가지 체계의 산책로를 조성해 교환되고 공유된 시설과 공공공간을 연결한다. 병원의 지상층을 연결하는 산책로, 또 병원이 병동에서 뻗어나온 산책로, 그리고 그 둘을 아우르는 수직 형태의 산책로가 바로 그것이다. 병동 층의 산책로는 입원 환자를 위한 공간이다. 병동에 입원한 환자의 경우, 동선이 제한돼 병동 내 복도만 뱅글뱅글 돌면서 산책을 할 수밖에 없는데 병동 층에서 뻗어나온 공중보행로를 통해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된다. 수직의 산책로는 병원의 지상층과 병동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교환·공유된 시설과 공간까지 연결해준다. 마지막 단계인 ‘개선’은 병원 내부 환경을 보다 쾌적하게 조성하는 단계다. 입원 환자를 위해 채광과 조망을 개선해 병실 이용 경험을 개선하고, 커뮤니티 시설과의 연계성도 높이는 등 새로운 차원의 병실 모듈을 제안했다. 외래 환자를 위한 실내환경 개선도 고려했다. 현재 많은 병원의 대기실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진료·대기실 등 각종 시설이 나란히 배치된 중복도 형태를 띠고 있다. 중복도 위주의 폐쇄적인 대기실을 외부로 꺼내 배치하면 보다 쾌적한 대기실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계자는 제안한다.
병원의 장벽을 허물어 지역사회와 그 공간을 공유함으로서 병원을 일상의 영역으로 꺼낸 ‘일상으로 스며든 병원’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의 병원이 생각해봐야 할 방향성을 고민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김상언 심사위원은 “‘HOPEspital: 일상으로 스며든 병원’은 병원과 사회의 연결을 시도했는데,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는 현재 또는 미래의 전염병 시대에 알맞은 대형병원의 변화로 생각됐다”고 말했다. 박원근 심사위원은 “이번 한국건축문화대상의 심사에 있어서 평가기준은 시각적 효과의 우수함보다는 주제와 관련, 계획안이 가진, 치열한 지역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발췌해낸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도와 문제 해결에 대한 창의적 발상 및 문제 해결 논리에 대한 과학성과 합리성에 중점을 두어 평가가 진행됐다”며 “이 작품은 이런 평가기준에 가장 적합한 계획안으로 선정됐으며, 일반적 학생의 수준을 뛰어넘는 논리의 치밀함과 합리성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