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죠. 물어 뭐 합니까?”
“복귀 하고 싶으시죠?”라는 질문에 단번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성추행 의혹 이후 2년 9개월, 천만 요정의 복귀에 시동이 걸렸다. 잘 나가던 배우에서 무너질 듯 했던 그의 새출발에 이런 저런 시선이 몰려들고 있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무한 책임이 있다고,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 자리와 상황을 완벽한 복귀라 생각지 않는다”고 했지만 “영화를 그만둔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며 지난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강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영화 ‘이웃사촌’의 개봉을 앞두고 오달수는 홍보일정 전면에 나섰다. 거제도에서 칩거하던 그는 최근 서울로 거처를 옮겨 작품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9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무섭고 떨렸다. 앞뒤 사정과 시시비비를 떠나 내게 무한 책임이 있다”며 “(작품에) 마음의 빚이 있었기에 공식 석상에 섰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미투 고발 당시 감정에 대해 그는 “덤프 트럭에 치인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심한 충격과 사회적 비난에 결국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거제도로 옮겨갔다. 거제도에서의 생활은 단순함의 반복이었다. 해가 뜨기 전 텃밭에 물을 줘야 하는데 비가 오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큰일 났다. 텃밭에 물을 못 주겠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
“2018년 2월 말 정도에 언론에 본의 아니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는데, 초반에는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어요. 서울에 있을 때는 병원에서 두어 번 정도 입원하기도 했고. 당시 ‘술로 보낸다’는 기사도 나갔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살다 보니 정말 정신이 없는 상태어요. 부산에 있는 어머니 집이 노출돼 동네에 못 보던 사람들이 나타나고 카메라 삼각대도 세워지고 하니 아무래도 불편해 형님이 계신 거제도로 내려가기로 결정했었어요.”
사건이 불거진 당시 그는 ‘이웃사촌’의 후반부를 촬영하고 있었다. 작품에 몰입하느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뉴스에서도 떠들썩할 때 ‘어디에 숨어있냐’, ‘누구랑 같이 대책회의를 하느냐’는 기사를 봤어요. 촬영 당시에 보조출연자만 약 200~300명씩 있었던 마포대교 장면, 유세 장면 등 큰 덩어리를 해야 할 시점이라 전혀 신경을 못썼죠. 감독님께서도 ‘아무 문제 없어’라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게 힘이 되는 말씀을 하셨지만 솔직히 초반에 대책을 마련할 수 없었어요. 촬영 끝나고 서울에 올라와 여론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를 그때서야 체감했거든요. 그 전에는 중요한 장면을 남겨놨기 때문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야 했어요.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었어요.”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과 만나거나 소통하지는 않았다. ‘복귀로 인해 피해자들의 입장 표명이 나올 수도 있지 않나’는 질문에 그는 “이 자리와 상황이 완벽한 복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입장 표명은 개인의 자유고, 회유할 수도 그래서도 안된다. 문제가 있다면 제기하는게 당연하다”고 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연기에 대한 끊은 놓지 않았다. 그만두고 싶은 충동은 여러 번 들었으나 은퇴를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거제도에서 있으면 해가 지고 나면 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 TV나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게 됐어요. 아무리 생각 없이 살려고 간 거제도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그만둔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작품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오게 되면서 그를 감시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오달수는 도청 타깃이 된 유력 대선주자인 정치인 이의식을 연기했다. 코믹 연기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이 작품에서는 한층 차분하고 진지해졌다. 그는 스크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낯설었다’고 표현했다.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는데 후반 작업을 할 시간이 충분했는지 감독님이 잘 주무르셨더라고요. 그래서 편집이 굉장히 잘 됐고 기대 이상이었어요. 나 빼고는 다 좋던데요?(웃음) 개인 문제를 떠나 이전까지 감초 역, 주변부 인물의 삶을 주로 연기하다가 갑자기 야당 총재로 나선 것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부담스러운 역할임은 분명했어요. 코믹 이미지가 강한 배우가 진지한 연기를 했을 때 어떤 표정이 나올까 궁금했죠. 혼신의 힘을 다했고, 큰 도전을 해봤어요.”
오달수가 연기한 이의식은 1980년대 민주주의를 꽃피우려는 대선주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실존 인물을 연상케 한다. 오달수도 특정 정치인이 연상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고, 폐를 끼칠까봐 출연 제안도 몇 번이나 고사했다.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고 했던 작품이었어요. 부담이 컸거든요. 거기에 첫 대본은 아예 전라도 사투리로 나와 있었어요. 감독님과 의논을 하면서 그 설정은 제외했고, 시나리오를 다시 고쳐 쓴 걸로 알아요. 우리 영화가 정치 이야기도 아니고 휴먼 드라마인데 그렇게까지 하면 너무 특정 인물을 콕 집을 수 밖에 없잖아요. 자칫하면 그 분을 더 욕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웃사촌’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그를 향한 불편한 시선은 여전하다. 과거 사건들로 인해 작품의 해석이 방해될 수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배우의 연기란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극이 시작되고 5분 내 이 역할로 보기로 서로 약속하는 거죠. 앞으로 한 두 작품 더 하면서 관객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다 보면 그 (약속의) 시간이 5~10분으로 줄어들지 않을까요. 지금은 관객이 느끼실 부담을 이해하고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2018년에 불어 닥친 듯해요.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동등해졌고, 굉장한 변혁의 한 물꼬를 튼 시기가 아닐까 하는데 (작품을 보며) 어떤 판단을 내리실지, 관용을 기대할 뿐이에요. 관객들의 따뜻한 평가를 바로 바란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르고 다른 작품을 하고 차근차근 시간을 두고 관객들과 소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웃사촌’은 극장에 내걸게 됐지만, 아직 촬영해놓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들이 두 편이나 있다. ‘컨트롤’,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가 대기 중이다. 때문에 ‘이웃사촌’을 통해 복귀의 물꼬를 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오달수는 ‘다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뜻 보기에는 복귀를 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 이 시간 이후 캐스팅되는 다음 작품이 있어야 복귀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있어요. 새로운 작품 출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까지 결정된 작품은 없습니다.”
“그동안 심려를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지금도 너무 죄스럽습니다. 더군다나 희한한 별명, 아름다운 별칭(천만요정)까지 지어주셨는데…. 얼마나 실망이 크셨을까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요. ‘이웃사촌’ 작품이 좋으니까, 작품을 작품으로 대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