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1월25일 새벽 1시55분 남태평양 세인트조지곶 인근 해역. 야음을 타고 기지로 귀환하던 일본 해군 구축함 전대가 갑작스러운 어뢰 공격을 받았다. 공격 측은 미국 해군 제23 구축함 전단. 일본 구축함 전대는 미군이 6㎞ 측면으로 접근하기까지 전혀 모르다 날벼락을 맞았다. 피격 순간에도 안이하게 생각했다. ‘이곳까지 미 해군이 진출할 리가 없다’며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여겨 반격보다는 회피 기동을 펼쳤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미군의 함포탄이 떨어졌다. 일본 구축함 한 척이 가라앉자 나머지 4척은 전속력으로 내뺐다. 최신형 플래처급으로 구성된 미군 구축함 전대는 일본의 낡은 구축함들을 따라잡아 두들겨 팼다. 일방적인 포격 끝에 미군은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일본 구축함 격침 2척, 대파 1척. 미군 피해는 전혀 없었다. 초장거리 93식 산소어뢰를 내세운 일본 구축함들의 야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미군은 이날 이후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세인트조지곶 해전은 영웅도 탄생시켰다. 전단장인 알리 앨버트 버크 중령은 이날 승리로 위명을 떨치며 훗날 미 해군 참모총장까지 올랐다. 전투 초기 버크 중령은 비아냥까지 들었다. 일본 해군의 도쿄 익스프레스(구축함을 이용한 수송작전)를 간파한 사령부가 ‘전속력으로 목표 해역까지 항진하라’고 지시하자 ‘31노트 전속력으로 가겠다’고 회신했기 때문. 사령부는 명령을 내릴 때마다 꼬박꼬박 ‘31노트 버크에게’라는 전문을 달았다. 35노트 이상인 플레처급 전단이 ‘31노트 전속력’이라고 보고한 점을 조롱한 것이다.
버크 전단에는 사정이 있었다. 기관 이상이 발생한 구축함 한 척의 최대 속도가 31노트였다. 조소를 받으면서도 5척을 모두 투입, 일본 해군을 박살 낸 버크는 최고 영웅으로 떠올랐다. ‘31노트 버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력을 유지하는 지휘관’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버크는 한국 해군 성장에도 도움을 줘 친한파로도 기억된다.
미 해군 승리의 주역은 단연 경제력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 플레처급 구축함을 175척이나 뽑아냈다. 성능 개량형인 앨런 섬너급과 기어링급까지 합치면 미국이 건조한 대형 구축함은 331척에 이른다. 일본이 같은 기간 건조한 갑형(대형) 구축함은 30척에 불과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군함에 붙인 첫 사례인 버크는 ‘강력한 미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1988년 진수된 알리 버크 이지스 구축함의 함명이 버크에서 나왔다. 미국은 동급 함정을 68척이나 운용(21척 추가 건조) 중이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