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은 ‘이왕가(李王家) 박물관’이다. 1907년에 순종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처음에는 황제를 위해 창경궁에 식물원·동물원과 함께 박물관 설립이 추진됐다. 1909년 11월 1일 일반 공개와 함께 대중의 교육과 관람에 이바지하고자 했으나 일제가 박물관은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으로, 창경궁을 공원이라는 뜻의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시켰다. 이후 1938년 덕수궁에 새로 세운 이왕가미술관으로 박물관 소장품을 이전하면서 창경궁의 박물관은 폐관됐다.
창경궁에 있던 이왕가박물관의 원래 모습이 사진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 관련 유리건판 사진 16점을 25일부터 박물관 누리집 내 소장품 안내를 통해 공개한다. 유리건판은 20세기 초반에 많이 사용된 일종의 흑백사진 필름이다. 공개된 사진들은 우리나라 초기 박물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누구든 자유롭게 사진 원본파일을 내려 받아 활용할 수 있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이왕가박물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내부와 명정전 뒤쪽의 추가공간인 툇간(退間)에 석조 유물을 전시했다. 함인정과 환경전, 경춘전에서는 금속기·도기·칠기류 유물을 선보였고 통명전과 양화당에는 회화 유물을 전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1년 옛 자경전 자리에 건립한 신관 건물에는 금동불상과 나전칠기, 청자와 같은 ‘명품 유물’을 전시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이 이번 유리건판 사진 공개를 통해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래된 흑백사진 속 명정전 내부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 조각이 있는 석탑 기단부 면석과 금동불상, 중국 불비상(佛碑像)이 전시 중이다. 유물 앞에는 소장품 관리번호가 붙어 있다.
다른 건물에 설치된 고구려 벽화고분 모형도 볼 수 있다. 사진을 통해 모형 내부의 벽화는 강서대묘 현실 서벽의 백호(白虎)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정확히 어느 전각에서 전시됐던 것인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문화재청 측 관계자는 “창경궁 전각을 전시실로 사용하던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라며 “촬영 대상 유물의 곁에 고유번호를 기재한 표지와 크기 측정을 위한 자가 함께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유리건판 사진은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관리 업무의 하나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 사진의 촬영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유리건판 사진에 등장하는 중국 불비상을 입수한 것이 1916~1938년이므로 그 사이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번에 공개하는 사진을 포함해 일제강점기에 이왕가박물관 소장 유물을 촬영한 유리건판 약 7,0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사진 자료별로 디지털화 작업과 내용 확인을 완료한 상태이며, 내년 상반기 중으로 전국박물관소장품을 검색할 수 있는 ‘이(e)-뮤지엄’에 유리건판 사진 전체 파일과 세부 정보를 공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