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실용주의적 성향을 활용해 전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하루 아침에 소재·부품·장비의 완전한 국산화를 이룰 수 없는 만큼, 민간 교류 활성 등을 통해 관계 개선을 도모할 필요도 거론됐다.
26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서울 중구 대한상의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제6회 대한상의 통상 포럼’에서 법무법인 율촌, 주요 기업 관계자 등과 함께 스가 집권기 한일 통상관계 전망과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발제자로 나선 정동수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한일 통상관계에 대해 “지난 9월 부임한 스가 총리는 실용주의자로서 한일 경제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스가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도를 높이기보다 당분간 현 상황을 유지,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고문은 이어 “일본 정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일본도 관계개선의 필요를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스가 정부도 전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마찬가지로 징용공 배상문제나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 정부를 제소한 건을 한국 정부가 해결하는 것을 관계개선의 조건으로 삼고 있어 빠른 시일 내 극적 타협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정 고문은 분석했다. 아울러 일본이 2차 수출규제에 나선다면 첨단소재·소재가공·센서 등 상대적 비민감 전략물자, 수입의존도가 높은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정밀화학원료와 같은 기초소재가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년 5개월이 흐른 일본 정부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현황을 짚은 시간도 마련됐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전히 한국의 대일본 무역역조는 계속되고 있다”며 “대일 무역수지 적자의 60% 이상은 소재와 부품”이라고 짚었다. 김 연구위원은 올해 10월을 기준으로 포토레지스트 82.5%,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94.8%에 달하며 국산화에 일부 성공한 불화수소만 12.4%가 일본산이라는 점을 밝혔다. 앞서 일본 정부는 7월 자국 기업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3대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경우 포괄허가가 아닌 개별허가를 받도록 했다.
한편 대한상의 통상포럼 참석자들은 스가 정부가 실용적이며 안정적 대외관계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한일관계가 전환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기업 경영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한 양국 관계 개선방안으로는 관광객 등 민간 교류 활성화를 비롯해, 한일 기업인간 출입국 제한 완화, 정치권의 비공식적 협의와 우호적 분위기 조성 등이 제시됐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한일 통상관계가 1년 반 가까이 경직되면서 불확실성에 따른 한국 기업의 경영애로도 그만큼 가중되어왔다”면서 “한국과 일본 공동 번영의 가치 추구를 목표로 양국 정부가 전향적 태도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