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지난달 구본준 고문을 중심으로 LG상사 등 4개 계열사를 떼어내는 계열 분리에 착수한 가운데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금호석유(011780)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금호석유 역시 LG와 마찬가지로 숙부와 조카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교통정리가 필요한 탓이다. 최근 금호석유에 대한 기타 법인의 지분 매입 움직임까지 포착되면서 지배 구조 개편이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은 우선 계열 분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상무가 금호석유 자(子)회사 중 하나를 받아 독립하고 박 상무가 보유한 금호석유 지분(10.0%)은 금호석유 자사주로 편입되는 방식이다. 실제로 금호석유는 100% 자회사인 금호피앤비화학 등을 박 상무에게 넘기는 계열 분리 방안을 내부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호피앤비화학이 계열 분리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금호석유 11개 계열사 중 가장 덩치가 큰 알짜 회사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사는 전기·전자와 제약·도료 등에 사용되는 산업용 기초 소재인 페놀과 아세톤·에폭시 등을 전문으로 생산·판매하면서 지난해 1조 3,83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금호석유 연결 매출액(4조 4,977억 원)의 31%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이에 관해 금호석유 관계자는 1일 “계열 분리는 현재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계열 분리가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는 카드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호석유의 지배 구조는 금호그룹이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아시아나와 석유화학 계열로 분리되면서 다소 독특한 형태가 됐다. 지난 9월 말 기준 박 상무의 지분율은 10%다. 박 회장(6.69%)과 그의 장남인 박준경 전무(7.17%) 지분을 모두 합친 것과 불과 3.86%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색한 동거는 별 탈 없이 이어지는 듯했으나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둘 사이의 기류가 달라진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박 회장이 배임 혐의로 사내 이사 연임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박 상무가 투표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올 7월에는 박 전무만 승진을 하기도 했다. 1978년생 동갑내기인 박 전무와 박 상무는 지금껏 상무보와 상무로 동시에 승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기타 법인이 장내에서 금호석유를 꾸준히 매집하고 있다. 일반 기업이나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가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주식을 사들이는 경우 기타 법인으로 분류된다. 기타 법인은 지난 두 달간 장내에서 34만 9,085주를 사들였다. 총 발행주식 수의 1.15%에 해당하는 규모로 시가총액으로 역산했을 때의 금액은 494억 원이다.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사들이던 반도건설도 처음에는 기타 법인으로 등장했고 유의미한 숫자의 지분율을 확보한 뒤 정체를 드러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