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시대’를 여는 첫 연말 사장단 인사 키워드는 ‘안정’에 방점이 찍혔다. 이와 함께 일부 실적이 부진한 곳에는 변화를 통해 긴장을 불어넣는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관례대로 12월 초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다. 이건희 회장 별세와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로 조직 안정화에 우선순위를 둔 것. 사법 리스크 때문에 해를 넘겨 인사를 단행한 지난 2016년, 지난해와 달리 전문 경영인은 경영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김기남(62)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과 김현석(59)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고동진(59) IT·모바일(IM)부문 사장의 유임에는 대체로 올해 실적이 선방했다는 점이 반영됐다.
올해 초 인사까지만 하더라도 3인 대표이사가 각각 겸직을 내려놓으면서 세대 교체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당시 김기남 부회장은 종합기술원장직을 내려놓았고 김현석 사장도 생활가전사업부장 자리를, 고동진 사장은 무선사업부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인사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상황은 바뀌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중 무역 분쟁 심화에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까지 겹쳤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올해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은 선방했다. 내년에도 이 같은 경영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장수 교체보다는 위기 극복이 더 먼저라고 본 것이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매출 55조 3,300억 원에 영업이익 6조 4,500억 원으로 최저에 가까운 실적을 올렸으나 2·4분기를 거쳐 점차 회복하며 3·4분기에 역대 최대 매출인 67조 원에 12조 3,500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0조 원을 넘은 것은 7분기 만으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었던 2018년 3·4분기(매출 65조 4,600억 원, 영업이익 17조 5,700억 원) 이후 2년 만에 가장 높은 실적을 썼다. 올 4·4분기에도 10조 원대의 영업이익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트로이카’의 유임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에 큰 폭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나 일부 실적이 부진한 곳에는 수장 교체를 통해 조직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교체될 것으로 알려졌다. 진 사장은 삼성전자 매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총괄해온 메모리 전문가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올해 업황 부진에 화웨이 규제 등 악재가 겹치며 바닥을 찍고 내년 상반기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퀀텀닷(QD)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사업을 이끌 신진 장수들을 배치한다. 삼성디스플레이에서 3년의 임기를 다한 이동훈(61) 대표이사 사장이 용퇴한다. 후임으로는 최주선(57) 대형사업부장 부사장이 대표를 맡아 내년 QD 디스플레이 사업의 연착륙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물러나는 이 사장은 삼성SDI(006400), 삼성디스플레이 전략마케팅실장, OLED 사업부장 등을 지내고 2017년 11월 연말 인사를 통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러나 임기 동안 중국 업체들의 저가 액정표시장치(LCD) 공세로 임기 동안 삼성디스플레이는 실적 부진을 겪었다. QD 사업의 포문을 열었지만 실적 부진 등을 떠안고 삼성디스플레이를 떠나게 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부터 오는 2025년까지 13조 1,000억 원을 QD 디스플레이에 투자해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을 LCD에서 QD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내년 하반기를 제품 양산의 원년으로 삼는다.
최 부사장은 올 1월 신설 조직인 QD사업화팀의 팀장을 맡아 해당 사업을 이끌어 왔다. 삼성디스플레이에 오기 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D램을 개발해오다 반도체 등 부품(DS)부문 미주 총괄 부사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