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겠다고 공언(公言)한 ‘미래 개혁 입법 과제’ 3분의 2가 사실상 이번 정기국회 내에서 처리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 본격화된 후 당력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쏠리며 이 대표의 약속이 공언(空言)으로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2일 국회에 따르면 이 대표가 앞서 발표한 15개의 미래 개혁 입법 과제 중 10개는 오는 9일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이 대표가 개혁 법안으로 지칭한 공수처법을 비롯해 경찰법(자치 경찰제 및 국가수사본부 설치), 국가정보원법은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법은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것을 야당이 반대한 가운데 여당이 단독으로 정보위원회 소위에서 의결했고, 자치 경찰제와 국가수사본부 도입을 골자로 한 경찰법은 여야 합의로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의결됐다.
공수처법은 야당이 법제사법위원회를 보이콧하며 민주당 단독으로 소위에서 심사하고 있지만 당론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여당 내 중론이다. 민주당이 1호 당론으로 선정한 ‘일하는 국회법’도 3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의결하고 4일 운영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여야가 뜻을 모았다.
민주당이 2호 당론으로 꼽은 ‘5·18 특별법’과 ‘4·3 특별법’은 법안마다 통과 가능성에 대한 관측이 엇갈린다. 우선 이형석 의원이 발의한 ‘5·18 역사 왜곡 금지법’은 지난달 18일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논의가 이뤄져 소위에 회부된 상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등 ‘호남 행보’를 하면서 법안 처리도 탄력을 받았다. 다만 일부 야당 의원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여전히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설훈 의원이 낸 ‘5·18 진상조사위원회’ 법안은 발의된 후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제주 4·3 특별법’은 법안소위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4·3 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금액과 지급 계획을 내놓지 못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민주당이 ‘민생 입법’으로 내세운 노동 관련 입법들도 공수처 설치 등 현안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다. 제정법인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은 2일 법사위가 공청회를 열었지만 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필수 노동자 보호 지원법’ ‘생활 물류 서비스 발전법’ ‘특수 고용 보험법’ 역시 법안 발의는 됐지만 여야 간 탐색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 규제 3법 역시 경제 입법인 만큼 여야가 합의 처리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정기국회 내 처리 가능성은 낮다.
이처럼 이 대표가 권력기관 개혁, 과거사, 노동, 기업법 등 다방면의 법안 처리를 약속했지만 추 장관과 윤 총장 간의 대립이 당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입법 추진력도 급격히 약해지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당원 게시판에 남긴 글을 통해 “공수처법 개정은 정기국회 안에 매듭을 짓겠다”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한 다른 입법 과제들도 이번 주부터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하나씩 통과시키겠다”고 한발 물러선 바 있다. 지난달 20일 15개 미래 개혁 입법 과제를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겠다고 밝힌 데서 후퇴한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추·윤 갈등으로 인해 검찰 개혁 문제가 당원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만큼 공수처 설치 문제에 힘을 쏟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이 대표의 주요 입법 과제 외에 의원들이 민생 법안이라고 판단하는 법안도 추·윤 갈등에 따른 여론 악화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