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8월 전동 킥보드 ‘킥고잉’ 운영사 올룰로에 수억원의 추가 투자를 진행했다. 지난해 40억원을 투자한 이후 두 번째다. 다양한 형태의 이동수단(모빌리티)에 대한 투자 확대 차원이다. 삼성SDI는 최근 필에너지라는 기업에 50억원을 투자했다. 글로벌 최대 대체투자 전문 부동산 펀드 브룩필드는 최근 인천 원창동에서 개발되고 있는 물류창고를 약 6,500억원에 인수했다. 연면적 13만평으로 단일 물류창고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위 세 가지 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분야도 규모도 다르지만 모두 설립 2년 차 신생 로펌 위어드바이즈(WeAdvise)가 자문한 거래들이다. 국내 대형로펌 출신 변호사 11명이 똘똘 뭉친 위어드바이즈가 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평적 문화와 업무 중심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무기로 ‘종합 부티크 로펌’으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대형 로펌 80년대생 기린아들의 반란
위어드바이즈는 2019년 7월 국내 대형 로펌인 김·장, 세종, 율촌, 태평양 출신 변호사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4명으로 시작했는데 1년여 만에 11명으로 식구가 늘었다. 김남훈·김무언·김병철·김지호 변호사는 세종, 국태준·박준용 변호사는 태평양, 배태준·손상현 변호사는 김&장, 최연석 대표변호사와 김태균·김호준 변호사는 율촌에서 합류했다. 10~12년 차(사법연수원 35~39기) 파트너 또는 시니어 변호사들로 각 로펌에서 ‘일 좀 한다’는 평가를 받던 에이스들이다.
최근 부티크 로펌들은 변호사 1~2명이 특정 전문분야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위어드바이즈는 모든 분야를 다룬다. 기업 인수합병(M&A)부터 공정거래, 하도급, 가맹거래, 부동산, 노동, 형사소송 등 송무, 기업일반, 세무 및 회계,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관련 자문까지 제공한다. 11명의 변호사가 각자의 전문성에 따른 영역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 대형 로펌 출신 인력이 이렇게 한꺼번에 모여 사무소를 연 것도 처음이다. 최연석 대표 변호사는 “특정 영역에 함몰되지 않고 전 영역을 다하며 종합 부티크 로펌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에서 기린아로 주목받던 이들이 위어드바이즈로 모여든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대형 로펌 특유의 권위적인 문화와 비효율적인 일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점이 우선 작용했다. 김남훈 변호사는 “로펌 특유의 파트너 변호사, 중간 변호사, 어쏘(associate) 변호사의 3층 구조를 깨고 수평적 문화에서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한다면 수준도 높고 업무 처리도 빠르고 자문료도 낮춘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겠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김병철 변호사는 “윗세대 선배들과 90년대생 사이에 낀 80년대생의 반란”이라며 “우리만의 기준을 가지고 로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효율적인 업무 방식과 수평적 체계는 사무실 공간 배치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은 로펌이라기 보다는 스타트업 사무실 같았다. 좌석도 1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선택한다. 복장도 와이셔츠에 양복이 아니라 캐주얼이다. 11명의 변호사가 모두 똑같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의사결정은 다수결로 한다. 대표 변호사도 나이순으로 정했다.
대형 로펌이 보통 딜 1건을 수행하기 위해 3~5명의 변호사를 배정하고 시장조사를 담당하는 인력이 움직이기도 한다. 변호사는 일한 시간만큼 비용을 내는 방식이 많다. 여러 명이 일하면 자문료가 그만큼 비싸지고, 업무경험이 많지 않은 어쏘 변호사가 투입될 경우 일종의 트레이닝 성격의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곳은 딜 한 건에 변호사 2명만 배정해 시장 조사부터 설문작성, 고객회의 등을 속전속결로 마무리한다. 주된 담당 변호사가 업무를 주도하고 다른 변호사는 논문 동료평가 방식처럼 의견을 낸다. 유목민처럼 업무를 위해 모이고 흩어진다. 최연석 대표 변호사는 “파트너는 주로 검토·수정을 하고, 자료조사부터 초안까지 막내 변호사가 하는 식의 일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며 “풍부한 경험을 가진 두 명의 파트너급 변호사가 필요한 일만 효율·효과적으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다른 로펌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어벤저스처럼 뭉쳐있어 업무 스타일도 다르고 고객군도 다르다. 하지만 이메일이 아닌 단체카톡방에서 소통하고 열린 공간에서 일하며 제3의 방식을 만들고 있다. 배태준 변호사는 “일종의 크로스 퍼즐처럼 서로의 장점은 취하고 다른 부분을 맞춰가면서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며 “대형 펌보다 보다 신속하고 정밀하게, 하지만 종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단 것이 최대 자산”이라고 말했다. 최연석 대표 변호사는 “상하관계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은 과정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설립 2년 차지만 재계 5대 기업·유니콘 기업도 이미 고객
위어드바이즈가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설립 3개월 차였던 지난해 10월 1일 블룸버그가 발표한 ‘글로벌 M&A 리그테이블’의 한국 로펌 자문 순위에서였다. 총 8건의 딜을 수행(1,700만달러)하며 당당히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 위어드바이즈는 이미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등 재계 5위권 기업들을 모두 고객사로 두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뿐 아니라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 중 한 곳, 그리고 글로벌IT기업도 함께 일한다. 삼성전자 C랩 스타트업과 네이버가 투자한 벤처투자사 TBT도 고객사다. 중국 중신그룹이 1,300억원 규모로 제주도의 부동산 개발에 투자한 딜과 SK D&D가 리츠를 통해 학교법인 한양학원으로부터 1,050억원 규모 구의역 웰츠타워를 매입한 건도 이곳을 거쳤다. 젊은 인력들인 만큼 신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라이브커머스 그립의 약관이나 아이돌보미 매칭 플랫폼 스타트업 맘편한세상의 법률 표준 약관 등도 만들고 있다.
짧은 시간 내 자리를 잡은 것인데, 그 비결은 변호사들이 기존 로펌에서 알고 지내왔던 고객도 있지만 대형 로펌 만큼 양질의 서비스를 더 빠르고 긴밀하게 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난 것에 있다.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거래 상대방으로 만났지만 업무 과정에서 위어드바이즈를 눈여겨본 현대차는 다음 거래 때 자문을 맡기기도 했다.
브룩필드의 물류 창고 투자 건은 위어드바이즈의 강점을 잘 보여준 딜로 꼽는다. 단순히 부동산 개발 관련 법률 이슈뿐만 아니라 외국환거래, 공정거래, 세무, 자본시장법 등 다양한 이슈를 단시간에 처리했다. 세무 분야를 담당하는 손상현 변호사(회계사)는 “법률자문과 세무·회계자문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점 역시 강점”이라고 말했다. 김남훈 변호사는 “대형 로펌은 주로 딜을 앞으로도 많이 할 수 있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업무를 많이 한다”며 “이렇다 보니 코스닥 상장사 같은 중견 기업들은 대형 로펌에 자문료를 잘 지급하면서도 주눅이 들어 로펌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의 규모나 딜 크기가 아니라 잘할 수 있는지만 본다”고 답했다.
대형 로펌의 간판을 떼고 이름도 생소한 로펌에서 일하는 것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박준용 대표 변호사는 “법원에서 재판 때 로펌 이름을 말하면 생소한 이름이라 다시 묻는 경우도 있다”며 “관공서에 연락할 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태준 변호사는 “처음에는 ‘너희는 누구니’라는 의심의 시선도 받았으나, 의뢰인과 상담하고 일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시선이 신뢰로 바뀌어 가는 느낌이 들 때 성취감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최연석 대표 변호사는 “고객 만족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만족도 모두 중요하다”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모르지만 새로운 형태의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강도원·김기정기자 theo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