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巨與의 입법 폭주…법치주의 위기

[기획-무너지는 법치주의]

“의석수로 법 통제권 가졌다 착각하면 전체주의의 시작”

“野 비토 권한 없는 공수처법 개정은 法治 아닌 人治”

‘최순실 게이트’ 특검 후보 추천 때도 與 관여 안했는데

민주, 헌재결정 나오기 전에 공수처법개정안 강행 움직임

“선출 정부 의해 민주주의 점진적 침식...전례없는 위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How‘s)에서 ’위기의 한국민주주의 보수정당이 한국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연합뉴스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How‘s)에서 ’위기의 한국민주주의 보수정당이 한국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연합뉴스



“야당의 비토권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출된 공수처장은 태생적으로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수사권을 남용해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

“(거대 여당이) 국민의 위임을 받았으니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거대 여당이 자신들의 생각이 (시민사회의) 한 부분이 아닌 전체(국민의 생각)이고 법의 통제권도 가졌다고 착각하는 듯합니다. 이게 바로 전체주의의 시작입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민주적인 입법 과정, 사람이 아닌 법에 의한 지배 등을 의미하는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상임위원회에서 이른바 ‘삐라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과 국정원법 개정안을 야당의 보이콧 속에서 강행 처리했다. 또 여당은 오는 9일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도 강행 처리할 방침이어서 입법과 행정·사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초헌법적 기관 출범이 예고된 상태다. 한석훈 교수는 “공수처법이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경우 공수처장 선임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어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정치인에 의한 지배가 돼버린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과정에서도 징계 혐의를 공지하지 않은 데다 검사징계위원회 위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아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법치주의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버드대의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책에서 선거로 선출된 합법적 권력이 어떻게 독재로 변해가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들은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부정 △3권분립 등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언론 및 감시 기관의 기본권 억압 등으로 합법 권력이 독재 권력으로 변해간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할 때 “야당에서 반대하면 공수처장이 될 수 없다”며 비토권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총선 압승 이후 태도가 돌변했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지적한 합법적 민주주의 붕괴의 시나리오대로 게임의 룰(선거법 개정)을 바꾼 뒤 심판을 매수(공수처 설치)하려는 상황과 흡사하다. 김광동 원장은 “민주당 폭주의 뿌리는 소위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계몽주의적 생각과 역사의 선지자라는 착각 등 우월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운동권 엘리트·‘빠’ 세력 결합...입법 독재로 삼권분립 훼손”


현재 한국 정당 구조에서 ‘민주주의 붕괴’는 낯선 단어다. 군부의 쿠데타와 폭력을 수반한 집권이나 민중 봉기에 의한 민주주의 붕괴가 일어날 수 없어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7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대통령 권력과 지방 권력, 사법 권력과 언론 권력, 심지어 시민사회 권력까지 완벽히 장악한 상황에서 이제 마지막 남아 있던 의회 권력마저도 완전 장악하고 돌격 태세를 구축함으로써 일당 독재, 전체주의 국가가 돼가고 있다”고 지적할 때만 해도 설마 했었다.


하지만 여당이 상임위원회에서 국정원법 개정안과 삐라금지법(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안) 등을 의결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에 대한 여당의 일방 독주가 예상되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거여의 입법 독재가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대 여당의 정치적 판단이 입법으로 이어지면서 토론과 합의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학계에서도 과거 운동권과 시민 단체 출신 정치인의 계몽주의적 사고와 특정 정치인만을 추종하는 이른바 ‘빠’ 세력이 결합하면서 여당의 통제 불가능한 입법 폭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울러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는 내용의 공수처법 개정안이 강행 처리될 경우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특정 정당·정치인에 의한 지배가 이뤄지면서 법치주의 정신이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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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독재, 전체주의로 번질 수도


학계에서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거침없는 행보를 놓고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야당이 헌법재판소에 위헌 청구를 신청한 가운데 여당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정치적 중립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마저 삭제하는 시도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재 일어나는 민주주의 위기는 군사 쿠데타나 민중 봉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폭력적으로 붕괴하는 전통적 위기가 아니다”라며 “선출된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침식된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위기”라고 정의했다. 민주주의 붕괴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라는 기고 글에서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진보의 위기가 중심에 서 있고 그것을 선도했던 학생운동 세대의 엘리트 그룹과 그들과 결합된 이른바 ‘빠’ 세력이 있다”며 “오늘의 정치 위기는 이들의 정치적 실패를 표현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촛불 시위 이후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개혁의 사령탑을 자임했다”면서 “사회로부터 개혁 요구가 강하게 분출될 때 이를 수용하고 통합하기보다는 독점적이고 일방적으로 통치권을 부여받은 것처럼 이해하고 대응했다”고 되짚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거여 입법 독주의 뿌리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지목하고 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민주당 폭주의 뿌리는 소위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소영웅주의적 사고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대학생 시절부터 시민운동을 하고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전히 1980년대 운동권 사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 人治로 법치주의 정신 훼손


법률 전문가들은 여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강행 움직임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에서도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의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이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한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면 법치가 아닌 인치가 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가진 무소불위의 기소권을 통해 삼권분립의 정신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야당의 비토권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출된 공수처장은 태생적으로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수사권을 남용해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면서 “특히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정치인에 의한 지배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법치를 위해서는 야당의 비토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6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 후보 추천 당시 민주당과 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조승식 변호사와 박영수 변호사를 추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은 후보 추천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또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공수처라면 헌법에 근거해야 함에도 헌법은 여전히 영장은 검사만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공수처는 태생적으로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헌법이 명시한 검사는 검찰청법의 검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공수처의 검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임지훈·구경우기자 jhlim@sedaily.com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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