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콘크리트(40%)’ 지지율을 업고 달리는 거대여당의 일방통행 입법은 운전대를 잡은 이낙연 대표의 발언을 보면 읽힌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174석 절대 과반인 민주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 부동산 정책과 한일 외교 해법 문제를 중재하며 차기 대선주자로서 광폭 행보를 보였다.
돌변한 시점은 10월이다. 국정감사에서 라임·옵티머스 자산운용 사태가 재조명되고 줄곧 대선주자 1위로 굳힌 ‘어대낙(어차피 대통령은 이낙연)’ 기조가 흔들리자 이 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 처리를 강하게 주문하기 시작했다. 서울경제신문이 이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와 토론회 등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 10월 8일 이 대표는 국민의힘에 “10월 26일까지 공수처법 처리에 동의하라”며 통첩을 날렸다. 과속 패달은 국정감사가 끝날 때쯤 밟았다. 10월 23일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행보를 질타하며 “공수처 설치가 절박하다”고 했고 26일에는 “(야당이) 공수처를 지연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일갈했다. 통상 12월 열리는 연말 정기국회를 위해 민생법 등 각종 법안을 심의하는 11월에는 이 대표와 여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공수처 설치를 주문했다. 이 대표는 11월 6일 윤 총장을 향해 “정치 검사의 행태를 멈추라”고 했고 9일에는 “11월 안에 공수처장 임명하겠다”고 했다. 11월 중순께부터 정기국회가 열린 12월까지 이 대표는 거의 매일 공수처 설치를 강조했다. 여당 내에서도 “우리 사회의 갈등이 추미애-윤석열 갈등, 공수처 설치밖에 없느냐”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공수처’ 드라이브는 이른바 ‘강성친문’ 지지층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민주당은 다른 성과보다 계속 같은 프레임인 ‘검찰개혁-공수처’를 강조하고 있다”며 “이 대표는 거대여당의 1위 대선주자로서 추격자들의 도전과 성과에 대한 초조함을 공수처로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대통령과 친문지지층이 추구하는 권력개편의 마침표를 찍고 입지를 굳히기 위해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총선에서 더 많은 표를 받아 큰 승리를 한 민주당이 정부의 입법과제를 수행할 명분은 있다. 하지만 방식이 법을 바꿔 반대진영을 배제하는 것이다. 절차의 정당성마저 해치며 입법을 밀어붙이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
공수처가 출범하려면 법을 바꿔야 하는데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는 야당의 반발로 파행된 상태다. 여당은 아랑곳않고 야당의 거부권(비토권)을 없애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 출범을 강행할 태세다. 이 대표가 공수처법 처리를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이달 9일로 못 박으면서다. 특정 진영에 편향된 인사가 공수처장에 앉는 걸 방지하기 위해 여야가 처장 후보에 대한 비토권을 넣기로 애초에 합의했는데 이마저도 힘으로 뭉개는 것이다.
문제는 공수처법을 시작으로 입법 일방주의의 둑이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지층과 당이 추구하는 법안은 법을 고쳐서라도 야당을 빼고 처리하는 방식이다. 공수처법 다음은 기업규제 3법(상법 개정안·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당은 공수처법 처리를 우선으로 하고 국내 기업과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기업규제 3법 처리는 속도를 조절해왔다. 기업규제 3법은 우리 경제를 이끄는 굴지의 기업이 지배구조를 바꾸고 시민단체가 공정거래위원회를 건너뛰고 직접 기업 소송을 할 권한을 주는 내용도 있을 만큼 파장이 큰 법안이다. 이미 민주당은 기업규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경제를 옥죄는 법안에 대해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각오는 있다”고 강행을 예고했다. 21대 국회가 출범한 지 6개월 만에 739건의 기업규제 법안 쏟아냈는데 더 큰 철퇴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당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석수가 174석(민주당)대 103석(국민의힘)으로 여당이 원하면 야당이 막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적어도 선거로 표심을 확인하기 전까지 민주당의 독주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거대여당이 민생 살리기가 아닌 ‘권력 다지기’에 몰두하자 민주당의 지지율은 올해 처음 30%(리얼미터 12월 1주차 기준·28.9%)가 붕괴했다. 그럼에도 지지층을 우선하는 여당이 국정의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수많은 반대와 국민투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검찰 수사에도 탈원전 정책을 굽히지 않는 것이 문재인정부의 기조라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당 안에서 자기반성이 없이는 한동안 이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며 “선거에서 져야 반성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지층들이 원하지만 반대도 많은 탈원전 정책이나 공수처를 ‘국민의 명령’으로 보고 추진하고 있다”며 “지지층만 보고 가기 때문에 정책을 접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주의가 표를 얻은 절대다수가 모든 정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일방통행은 반드시 역풍을 일으킨다는 조언이다. 최 교수는 “18대 국회 때 보수진영(새누리당·자유선진당 등)이 180석에 달했지만 80석에 불과한 민주당을 일방적으로 누르지는 않았다”며 “수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좋은 수가 아니고 다수결의 정치보다 합의의 정치로 가야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