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요 사건 재판부 판사들을 불법 사찰했다’며 수사 의뢰한 사건 등을 대검찰청이 8일 서울고검에 재배당했다. 대검 감찰부가 수사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어겨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윤 총장 징계 사유 가운데 하나인 ‘판사 사찰’ 문건 의혹은 그동안 대검 감찰부가 조사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사건이 서울고검에 재배당되면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 등이 수사 선상에 오르는 등 공수가 바뀌게 됐다.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대검 판단에 법무부는 “대검 감찰부와 협의 없는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특히 “(검찰)총장 지시와 다름이 없다”며 각을 세우며 정면충돌하는 모습이다.
대검은 이날 “대검 차장검사는 법무부로부터 수사 의뢰된 검찰총장에 대한 재판부 분석 문건 사건과 대검 감찰 3과에서 수사 중인 사건을 서울고검에 함께 배당했다”고 밝혔다. 대검 감찰 과정에서 불거진 ‘지휘부 보고 패싱’ 논란 등 진상 조사도 수사 권한을 지닌 서울고검에 맡겼다. 이로써 윤 총장 징계 청구 근거 중 하나인 판사 사찰 의혹 감찰·수사는 물론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가 대검 인권정책관실에 지시한 진상 조사까지 모두 서울고검이 전담하게 됐다. 다만 윤 총장은 이해충돌로 사건 지휘를 회피하면서 재배당 등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검은 서울고검에 수사를 맡긴 이유는 대검 감찰부의 조사·수사가 적법 절차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검은 우선 재판부 분석 문건의 입수 경로를 문제 삼았다. 해당 문건은 한 부장이 불상의 경로로 입수해 법무부에 전달했다. 문건은 법무부가 수사를 의뢰하면서 다시 수사 참고 자료로 대검 감찰부로 넘어왔다. 대검은 또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이 한 부장 지휘로 윤 총장을 ‘성명불상자’로 입건한 사실도 법령상 보고 의무 위반으로 판단했다. 대검 감찰부가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진행 상황을 법무부 관계자에게 수시로 알려준 점도 적법 절차에 어긋난다고 봤다. 조사 과정에서 관련자의 핸드폰 통화 내역이 삭제돼 자료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고도 밝혔다.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는 “진정 사건이지만 수사 과정에서 서울고검이 입건할 경우 정식 형사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수사 선상에 오른 이들에 대해서는 검찰이 직권남용은 물론 공무상 기밀누설죄 등까지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사건 사무규칙 제143조(내사·진정사건의 처리 등)에 따라 입건할 경우 형사사건으로 전환하면서 특정 혐의를 적용해 압수 수색 등 강제수사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날 대검의 움직임이 10일 예정된 윤 총장 징계위에도 영향이 줄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으로 절차적 정당성·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을 내린 게 윤 총장 측이 징계위에서 내세울 방어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징계를 청구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측은 입장이 곤란해졌다. 이날 법무부가 대검 조치에 “유감”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선 이유다. 법무부는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검 차장검사가 판사 불법 사찰 의혹 사건을 서울고검에 배당하도록 지시한 것은 지시 시기와 지시에 이른 경위로 볼 때 총장의 지시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대검은 법무부의 주장에 추가 설명 자료를 내고 재반박했다.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특임 검사를 임명하자는 의사를 법무부에 전달했지만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대검 측은 “지금이라도 특임 검사 임명 요청을 승인해주시면 이를 따르겠다”고 밝혔다. /안현덕·손구민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