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전속 고발권 폐지’ 등 일부 독소 조항을 삭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의결했다. 하지만 재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3% 룰은 기존에 공개했던 방안대로 법사위에서 단독 처리했다. 지난 7일 경제단체의 마지막 호소조차도 대부분 반영하지 않은 채 의결해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사위는 8일 전체 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당의 단독 처리에 반발해 안건조정위원회에 이어 전체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외 이사 감사위원의 경우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 의결권을 각각 3%씩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사내 이사 감사위원 선출 시에는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을 합산해 의결권을 3%로 제한했던 최초 정부안보다는 한 걸음 물러났지만 재계의 요구가 사실상 대부분 묵살당했다는 평가다. 앞서 민주당의 이 같은 3% 룰 일부 완화안이 공개됐을 때 재계에서는 기업의 입장을 반영한다는 시늉만 냈을 뿐 실효성은 전혀 없는 방안이라고 지적해왔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경제단체들이 요구하는 주주별 최대 10% 의결권 행사를 허용해도 부족한 판에 3% 개별 인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의 이 같은 우려에도 민주당은 추가 수정 없이 강행을 추진한 것이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주주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 대표소송 제도’도 원안대로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소송 제기 자격을 상장회사의 경우 0.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에게 부여하기로 해 기존 정부안(0.01%)보다 문턱을 높였다. 소수 주주권 행사 시 주식 의무 보유기간은 현행 6개월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 규제 3법이 통과되면 투자와 일자리에 매진해야 할 기업들이 위축되고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에 노출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투기 자본이 선임한 감사위원에 의한 영업 기밀 등 기술 유출 우려를 감수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다만 민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에서는 재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당초 정부 원안은 기업의 중대한 담합(경성 담합)행위는 공정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수사가 가능하도록 한 전속 고발권 폐지를 담았지만 한 걸음 물러난 것이다. 이 같은 극적인 결정의 배경에는 검찰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여당 내에서도 전속 고발권 폐지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했던 가운데 무엇보다 야당과 해당 법안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만큼 단독 처리는 무리라는 데 의견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전속 고발권은 중견·중소기업계에서도 우려가 상당해 정부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기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의 신속한 태도 전환 배경에는 검찰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전속 고발제 폐지는 윤석열 검찰총장 등 검찰 특수부 라인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사안으로 전해졌다. 한동훈 검사장은 지난 2015년 SK건설 담합 사건과 관련해 공정위에 최초로 고발 요청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고발 요청권은 검찰총장이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한 기업에 대한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가 수용하도록 의무화해 전속 고발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제도다. 이후 한 검사장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를 총괄하는 3차장으로 승진한 후 공정위와의 전속 고발권 폐지 협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힘을 줄이려는 현 정부의 기조와 다르게 기업 수사에 대한 검찰의 영향력만 키워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 외에도 정무위원회에 속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을 9일 단독 처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