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우리는 왜 이우환에 열광하는가

신간 '이우환(Lee Ufan)' 출간

국내외 유력 평론가 작품 분석

직접 쓴 글과 전시화보도 수록

신간 ‘이우환’ 표지.신간 ‘이우환’ 표지.



왜 이우환(84)인가. 올 3·4분기인 9월 말까지 집계된 국내 경매 총액 838억 여원 중 이우환 작품의 거래액은 107억 원. 시장 점유율 12.7%로 단연 1위다. 지난 10년간 낙찰 총액 1위를 지켰던 김환기도 2위로 밀어냈다. 한국인 생존 작가 중에서 작품 1점 가격이 20억 원을 넘긴 이는 그가 유일하다. 그야말로 ‘이우환 전성시대’건만 단순한 듯 심오한 이우환의 예술세계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어렵게 느껴진다.

이우환의 예술세계를 집약한 책 ‘이우환’(이우환 외 지음, 에이엠아트 펴냄)이 최근 출간됐다. 국내외 유력 평론가들이 분석한 이우환의 작품론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진행된 주요 전시 리뷰가 책의 전반부를 차지했고, 후반부에는 미술사학자 심은록과의 대담을 비롯해 이우환이 직접 쓴 글 2편 등이 수록됐다.




현대미술가 이우환. /사진제공=에이엠아트현대미술가 이우환. /사진제공=에이엠아트


“나는 붓에 물감을 머금게 하고 호흡을 멈추고, 캔버스의 정해놓은 위치로 한숨에 내려선다. (중략)…일필의 스트로크(stroke·붓질)와 하얀 캔버스의 만남이 표현을 낳는다. 바꿔 말하면, 그리는 것과 그리지 않는 부분이 부딪쳐 상호 자극하고, 화면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여백 현상이라고 부른다. 여백은 존재가 아니라 관계로 생기는 반향의 현상인 것이다.”

이우환은 자신의 글 ‘열리는 차원’에서 근대미술을 뛰어넘기 위해 자신이 추구한 회화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캔버스 앞에서 호흡과 명상 후 붓을 들어 그리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슬로우 모션 영상을 보여주듯 상세하게 설명하는 그는 사족(蛇足)임을 전제로 “요즘 많은 미술가가 제작을 기계나 전문 기술자에게 전적으로 맡기거나 공장 생산으로 하고 있는데 나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거기에는 제작의 신체성과 과정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가의 직접적인 삶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최근 미술 경향이 “보는 것을 부정하며 읽는 것을 강요”한다며 미술작품이 ‘해독하는 텍스트’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 그는 AI같은 고도의 기술이 등장해도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의 신체성과 그로 인한 관계성을 강조했다.

지난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에서 선보인 이우환의 설치작품. /사진제공=에이엠아트지난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에서 선보인 이우환의 설치작품. /사진제공=에이엠아트


돌과 철판 등으로 이뤄지는 설치작품에 관해서는 ‘석가의 연꽃’이라는 글을 통해 밝혔다. “자연석은 주먹 만한 크기라도 몇 십만 년이 넘거나 어떤 것은 지구가 되기 전에 굳어진, 인류의 시간을 훨씬 넘어선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그 무엇이다. 철판은 자연석에서 추출한 성분을 잠깐 만에 추상 형태로 재구성한 산업 사회의 물질이며 아직 구체적인 물건이 되기 이전의 엉거주춤한 그러나 뉴트럴하고 명백한 그것이다.”


스스로 “나는 1960년대 말부터 자연석과 철판을 연관지우는 짓거리를 해왔다”는 이우환은 “돌과 철판은 부자 관계에 있다. 이 관계를 만들어낸 자가 인간이니 돌과 철을 마주하면 자연과 산업 사회가 이어진다”고 명쾌하게 풀어썼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발라베는 이우환의 ‘대화’에 대해 “그는 타자와 미지의 것과 개방된 관계 맺기를 추구한다”면서 “그것은 어떤 상태로 고정될 수 없는 것이며, 관람자는 물론 작가에게 특별하게 열린 태도를 요구한다”고 적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바바라 로즈는 “수천 년에 걸쳐 자연적 요소에 의해 부식된 돌을 고르면서, 이우환은 우리의 초점을 역사적 시대에서 지질학적 시기로, 현재의 순간으로부터 앞뒤를 오가며 투사되는 영원으로 옮겨간다”라며 “대화는 언어가 아닌 느낌과 감각을 통해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이우환 자신이 “나와 타자가 시적으로 악수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이고 예술의 지표다”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미술평론가 김복기 경기대 교수는 “이우환은 동양과 서양, 프리모던과 모던, 자연과 인위, 정신과 물질, 직관과 논리… 그 이항대립의 경계와 틈새를 끊임없이 파고들어 세계미술에 새로운 이슈를 제기한다”고 평가했다.

책에 담긴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2011),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개인전(2014), 뉴욕 페이스갤러리 개인전(2015), 리옹비엔날레 특별전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열린 개인전(2017), 퐁피두 메츠 회고전(2019) 등 최근 10년의 주요 전시에 대한 생생한 리뷰와 화보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지난해 미국 허쉬혼미술관에서 선보인 이우환의 설치작품 ‘관계항’ /사진제공=에이엠아트지난해 미국 허쉬혼미술관에서 선보인 이우환의 설치작품 ‘관계항’ /사진제공=에이엠아트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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