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12월이면 미국은 지역마다 라이벌전으로 들썩거린다. 대부분 축제로 즐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미시간대와 오하이오주립대 간 풋볼 경기는 미 해사와 육사 간 경기와 함께 미국 대학 축구 최고의 이벤트로 손꼽힌다. 두 대학의 경기가 ‘더 게임(the game)’으로 통칭될 정도다. 경기가 열리는 날 오하이오에는 미시간의 첫 철자인 ‘M’자를 지워버리는 습속도 있다.
미시간도 비슷하다. 둘이 이토록 앙숙인 이유는 두 가지. 첫째, 게임 자체에 박진감이 있다. 통산 전적 58 대 51, 6무승부로 미시간이 조금 앞선다. 1950년대 미시간이 내리 10년을 이기는 동안 오하이오는 이를 갈았다. 최근 9년은 오하이오의 독식이라 경쟁이 심해졌다. 둘째 이유는 경계분쟁. 오늘날 인구 29만 명 수준인 톨레도(Toledo)를 놓고 전쟁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신생 미국의 연방정부가 새로 얻은 북서부 영토를 1816년 측량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오하이오 출신인 측량관은 경계선을 인위적으로 그었다. 경계를 북쪽까지 확대한 것. 미시간은 새로 측량하고 연방에 항의단도 보냈다. 막상 중앙 정계는 미시간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하이오는 1803년 연방에 편입된 정식 주인 반면 미시간은 준주여서 상하원 의원도 적고 선거인단도 없었던 탓이다. 미시간의 선택은 전쟁. 민병대 1,000여 명을 키웠다. 오하이오도 민병 600여 명을 분쟁지역에 보냈다.
양측이 대치한 진짜 이유는 경제. 이리 운하 개통(1825)으로 5대호 주변의 물류비용이 10분의 1로 떨어지면서 천혜의 항구 톨레도의 가치가 높아졌다. 측량이 겹치는 지역인 톨레도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50~60명씩 발생하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나섰다. 잭슨 대통령의 중재안은 톨레도를 오하이오에 귀속시키되 미시간에는 북쪽의 새로운 땅을 준다는 조건. 중재안을 바로 차버렸던 미시간 의회는 1836년 12월 14일 열린 2차 회의에서는 받아들였다.
전쟁 준비에 돈을 너무 많이 지출해 재정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미시간은 불평을 터트렸던 ‘북쪽 황무지’에서 얼마 뒤 횡재수를 만났다. 북쪽의 땅에서 양질의 구리와 철광산이 발견된 것이다. 두 주의 갈등은 1915년 주지사끼리 악수하며 풀렸다지만 앙금은 여전하다. 변한 것도 있다. 분쟁 당시 두 주는 인구가 10년마다 50~100% 늘었으나 요즘은 반대다. 대통령 선거인단도 갈수록 줄어든다. 두 대학 간의 ‘더 게임’도 올해는 취소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