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글로벌 경제를 초토화시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병한 지 1년이 됐지만 발원지 규명은 아직 요원한 상태다. 중국이 코로나19 발원지로 추정되는 우한에 대한 국제 조사를 막은 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 관영 매체들을 동원해 코로나19가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발원됐고 이것이 중국으로 유입됐다는 데 선전을 집중하고 있다.
13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관영 중국중앙(CC)TV는 최근 “밀라노대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5일 채취한 네 살 이탈리아 남아의 혈액에서 우한 것과 똑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즉 이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병하기에 앞서 이탈리아에서 확산된 증거이므로 결국 중국이 발원지가 아니라는 셈이다.
이에 대해 외신에서는 곧바로 그 이탈리아 남아의 혈액이 1년 이상 보존됐다는 점에서 중간에 오염됐을 수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또 중국 일대일로 사업 국가인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이전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코로나19가 그 이전에 중국에서 전파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코로나19 기원을 우한 밖으로 돌리려는 중국의 노력은 이미 확산 초기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우한의 화난수산물시장의 야생동물 판매 과정에서 코로나19가 나왔다고 중국도 인정했다. 하지만 호흡기 질병 권위자라는 중난산 박사가 지난 2월 27일 “코로나19 발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남 탓’에 나섰다.
3월 12일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해 10월 우한 세계 군인 체육대회에 왔던 미군 병사에게서 코로나19가 시작됐다”고 언급했다. 이후 타깃은 이탈리아로 옮겨갔고 그뒤 인도·호주 등지에서 발원 증거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등 해당 국가들은 중국의 책임 떠넘기기에 반발하고 있지만 대부분 자국의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상태라 본격적인 대결은 삼가는 형편이다. 중국으로부터의 의료 물자가 절실한 이유도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중국 선전의 초점은 외국 연구 기관이 관여하기 힘든 자국 내 증거로 몰렸다. 해외에 기원을 둔 코로나19가 중국으로 어떻게 유입돼 우한에 창궐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중국으로의 유입 경로 확인에 집중한 것이다.
이를 위해 바이러스가 식품이나 식품 포장지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다는 ‘증거’를 내놓았다. 첫 사례로 6월 베이징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됐을 때 중국 당국은 “노르웨이산 수입 연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한동안 중국 내 식당에서 연어가 자취를 감출 정도로 강력한 선전이었다.
해외 수입품 탓은 계속 이어졌다. 톈진이나 상하이 등에서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이들의 감염원으로 수입 물품이 적시됐다.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 전문가인 우쭌유는 “냉동 해산물이나 육류를 통해 바이러스가 중국으로 유입됐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며 “우한 화난시장에서 환자는 냉동 해산물 구역에 집중돼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품이나 식품 포장지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묻어 국가 간에 전파된다는 것은 중국 외에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관련 가능성을 부인했다. 중국 외 다른 나라에서 확진자의 감염 이유로 수입 식품이 연결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중국이 ‘중국 책임론’에 질색하는 과정에서 정작 발원지에 대한 조사가 막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우한에 대한 국제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 자체 조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WHO는 7월 전문가를 파견했으나 우한은 구경도 못한 채 돌아갔고 이후 중국 재방문 일정은 잡히지 않고 있다.
우한의 관련 증거는 이미 사멸됐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의 기원이 영원히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실패가 비슷한 바이러스의 다른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독일 바이러스 학자인 알렉산더 케쿨레는 “중국이 바이러스 기원 찾기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재출현의 위협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