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억제할 희망인 백신 배포가 13일(현지 시간) 시작됐다. 백신을 접종해 내년 3월까지 1억 명의 미국인이 면역력을 갖도록 하고 늦어도 6월에는 집단 면역을 형성하겠다는 것이 미 정부의 계획이다.
로이터통신은 14일 백악관 핵심 인사들의 백신 접종을 시작으로 10일 내 입법·행정·사법 3부 요인들이 접종할 것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백악관 주요 인사들이 먼저 백신을 맞는 것은 국가 기능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3부 요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우선 주사를 맞는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이에서 일하는 백악관 관리들이 곧 백신을 맞는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돼 곧바로 접종할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로이터는 밝혔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나는 코로나19 백신을 아직 맞을 예정은 아니지만 적정한 시점이 오면 접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백악관 등 고위 인사들의 접종과 관련해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코로나19 백신을 다소 후반에 맞아야 한다. 나는 이러한 조정이 이뤄지도록 요청해뒀다”고 했다. 외신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등 인수위원회 관계자들에게 백신이 우선 제공될지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미국 보건 당국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우선 접종 대상이 의료인과 장기 요양 시설의 노인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존 울리엇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행정부와 의회·사법부 고위 관리들도 비상사태 시 정부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규약에 따라 최우선으로 접종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 국민은 공중 보건 전문가와 국가 안보 지도부의 조언에 따라 정부 고위 관리와 마찬가지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맞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포괄적인 ‘국가 연속성 정책’은 버락 오바마 정부 때인 2016년에 수립됐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정책은 우리가 대유행과 싸우고 국가 번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미국 정부가 중단 없이 필수 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임을 더 보장할 것”이라고 로이터에 설명했다.
CNN방송에 따르면 미시간주 포티지에 있는 제약 회사 화이자의 공장에서 첫 백신을 실은 트럭이 이날 오전 이곳을 출발했다. 공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들은 이날 오전 6시 30분께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첫 선적분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첫 포장분이 트럭에 실리자 직원들은 박수를 쳤다. 이어 오전 8시 29분 백신을 실은 트럭 3대가 픽업트럭 등에 타고 방탄복을 입은 보안 요원의 호위를 받으며 공장을 떠났다. 189개 백신 용기에 실려 공장을 출발한 첫 백신 출하분은 14일까지 항공기 등을 이용해 미 전역으로 옮겨진다. 이날 오후와 14일에도 이 공장에서 생산된 백신이 추가로 출하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백신 보급과 관련해 “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상륙작전에 버금가는 중요하고 복잡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최초 백신은 약 290만 명에게 투여할 수 있는 분량으로 주(州), 미국령, 주요 대도시 등 64곳과 5개 연방 기관에 배송된다. 14일 145곳을 시작으로 15일 425곳, 16일 66곳 등 영하 70도에서 보관 가능한 유통센터로 배달되고 3주 내 투여될 수 있도록 주가 지정한 백신 접종소로 옮겨진다.
접종 장소에 백신이 도착하면 14일부터 긴급 접종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내년 3월까지 1억 명의 미국인이 면역력을 갖도록 하겠다는 게 미 정부의 계획이다. 미 정부의 백신 개발을 총괄하는 팀 ‘초고속작전’의 몬세프 슬라위 최고책임자는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연말까지 약 4,000만 회분의 백신을 미 전역에 배포할 계획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 미국이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75∼80%가 면역력을 가져야 한다면서 내년 5∼6월에 이 지점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존슨앤드존슨 백신이 1월 말이나 2월 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2월 말께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백신 접종은 지난 1월 20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11개월, 대유행이 시작된 3월 중순 이후 9개월 만에 이뤄진다. 미국은 현재 확진자 1,600만 명, 사망자 3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확산이 가장 심각한 국가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올해 전체 식당의 17%인 약 11만 곳이 영구 폐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는 이날 160만 명을 넘어섰다.
백신 접종이 가시화했지만 당장 바이러스 확산세가 진정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상당하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이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상점과 학교를 닫는 등 봉쇄를 강화하기로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16개 주 주지사들과 회의를 한 뒤 16일부터 적어도 내년 1월 10일까지 봉쇄 조치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슈퍼마켓·약국·은행 등 필수 업종 상점만 문을 열고 학교·미용실 등은 폐쇄된다. 그동안 독일은 술집과 식당 문을 닫고 상점·학교는 계속 열어두는 부분 봉쇄를 시행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CNN방송에 출연해 “앞으로 4~6개월이 최악의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백신을 실제 접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최악의 시기는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그의 예상이다. 게이츠는 “미국에서 추가로 2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면서도 “마스크 착용과 모임 자제 등 방역 수칙을 잘 지킨다면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맹준호·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