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강성부펀드)는 국내 최초로 ‘행동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국내 다수 증권사에서 실력 있는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강성부 대표는 LK투자파트너스에 몸담고 있던 지난 2018년 3월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일명 ‘물컵 갑질 사건’을 TV 뉴스로 지켜보다 한진칼 경영 참여를 결심했다고 한다. 강 대표를 잘 아는 투자은행(IB) 업계 종사자들은 그에 대해 “일부 대기업 오너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반(反)기업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며 “행동주의 투자도 그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끌고 가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단순히 기업을 공격해 시세 차익을 얻는 ‘벌처펀드’나 ‘먹튀 자본’은 아니라는 것이다.
KCGI가 공격한 한진그룹의 경영에 분명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부채 비율은 900%를 훌쩍 넘겼고 회계상 자본으로 인식되지만 실질적으로 빚인 영구채까지 부채에 포함하면 부채 비율이 1,600%에 달했다. 대한항공이 물어야 하는 이자 비용만 연간 5,500억 원에 이르러 정상 경영이 어려웠던 측면도 있다.
이런 요인들이 주주들의 인정을 받아 KCGI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패배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지분을 추가 매입해 KCGI·반도건설 등 3자 연합의 지분율(45.23%)이 조 회장 측(41.04%)을 앞지르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를 움켜쥘 수 있는 상황에까지 다다른 셈이다.
하지만 막상 고지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KCGI는 브레이크를 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임시 주총을 소집해 이사회에 진입하거나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등의 후속 절차를 포기하고 한진칼 경영을 사실상 관망했다. KCGI 측은 이에 대해 “코로나19 위기에서 임시 주총 개최 등을 최대한 자제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다르다. 코로나19 쇼크가 닥치자 대주주로서의 의무를 멀찍이 미뤘다고 보는 게 옳다는 것이다. 실제로 KCGI는 산업은행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내년 정기 주총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수준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려는 복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 경영의 고통은 가능한 한 뒤로 밀어두고 열매만 따먹으려 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추후 대한항공 경영이 정상화된 뒤 KCGI가 나서 이사회를 장악하는 게 강 대표와 3자 연합 입장에서는 손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결국 패착이 됐다. KCGI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결정을 두고 ‘밀실’ 야합이라고 비판하지만 밀실의 문을 열 기회를 포기한 쪽은 강 대표와 3자 연합이었다. 내 회사라면 이런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까. 결국 한 기업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의 유무가 2년 넘게 이어진 경영권 분쟁의 승부를 갈랐던 셈이다. 물론 KCGI의 도전이 아직 막을 내린 것은 아니다. 내년 주총에서 이사회 멤버로 진입할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 아시아나 인수를 위한 정밀 실사에서도 구조 조정 전문 PEF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KCGI가 지금부터라도 내 회사라는 책임감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거기에 대한민국 행동주의 펀드의 미래도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