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공룡기업의 폭주…세상은 거대함의 저주에 걸렸다

■빅니스

팀 우 지음, 소소의책 펴냄

독점 거대 기업이 시장 가격 쥐락펴락

기술공룡은 경제 너머 영역에도 영향력

불공정 독주 못막으면 민주주의도 절멸

모노폴리 판에 올려져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토큰. 몸집을 불린 공룡 기업의 독점은 세상을 위험에 빠뜨린다./AP연합뉴스모노폴리 판에 올려져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토큰. 몸집을 불린 공룡 기업의 독점은 세상을 위험에 빠뜨린다./AP연합뉴스



‘세계 1위 기업’ ‘세계 최대 기업’은 굉장히 황홀한 타이틀이다. 해당 기업뿐 아니라 그 기업이 속한 국가도 대놓고 자랑하기 일쑤다. 2000년대 초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브라질도 그런 자랑거리를 하나쯤 갖고 싶다는 욕심을 품었고, 때마침 같은 야심을 가진 민간 기업과 눈이 맞았다. 육가공 기업인 JBS였다. 부친에게 가업을 물려받은 소브리노 형제는 브라질개발은행으로부터 저리로 돈을 빌려 국내외 육가공 기업을 마구 사들였다. 먼저 이웃나라 아르헨티나의 스위프트 아머를 삼켰고, 미국과 호주 기업도 줄줄이 매수했다. 머지않아 JBS는 하루 9만 마리를 도축해 150개국으로 소고기를 수출하는 초대형 기업이 됐다.

하지만 JBS의 고속 성장은 문제투성이였다. 브라질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JBS의 경쟁사 쇼핑을 도운 셈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이 정부의 유력 인사들에게 수시로 흘러 들어갔다. 나라 밖에서는 JBS에 질세라 각국 경쟁사들이 너도나도 기업사냥에 뛰어들었다. 2010년대 중반 세계 육류 시장은 몇몇 공룡 기업들의 무대가 돼 버렸고, 중소 공급자와 소매상, 노동자는 물론 동물까지 모두 피해자로 전락했다. 마침내 2017년 JBS의 오염 육류 유통과 뇌물 스캔들이 터지면서 브라질 국가 경제는 크게 휘청였고, 정권마저 극우주의자에게 넘어갔다.




브라질 파라나주 라파에 있는 육류 가공업체 JBS에서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 2017년 비위생적 제품 생산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보건 당국이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JBS의 뇌물 스캔들에는 전현직 대통령들까지 연루돼 있었고, 결국 브라질 경제를 흔들었다./연합뉴스브라질 파라나주 라파에 있는 육류 가공업체 JBS에서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 2017년 비위생적 제품 생산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보건 당국이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JBS의 뇌물 스캔들에는 전현직 대통령들까지 연루돼 있었고, 결국 브라질 경제를 흔들었다./연합뉴스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의 팀 우 교수에 따르면 이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는 저서 ‘빅니스(The Curse of Bigness)’에서 JBS가 “20세기에 어렵게 얻었던 교훈을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미 1930년대 파시즘 출현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독점과 과점, 반독점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확인했음에도 오늘날 세계 각국의 정부가 같은 길을 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책 제목처럼 전 세계가 ‘거대함의 저주’에 빠졌음을 우려하면서, 사적 경제 권력이 더 비대해져 민주주의마저 망치기 전에 이를 제어하고 통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기업 집중화 문제는 브라질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 상위 100개 회사의 평균 시가 총액은 하위 2,000개 기업의 평균 시가 총액보다 7,000배나 크다. 1995년에만 해도 31배였지만, 불과 20년 만에 소수 기업 집중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됐다.

지난 11월 1인 시위자가 페이스북 본사 앞에서 ‘페이스북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AP연합뉴스지난 11월 1인 시위자가 페이스북 본사 앞에서 ‘페이스북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AP연합뉴스


기업 집중화가 진행되면 소비자들은 원가가 내려가는데도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안경과 선글라스 시장을 살펴 보자. 안경점에는 아르마니, 레이밴, 티파니, DKNY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즐비하지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룩소티카라는 독점 기업이다. 이런 시장 구조에서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안경 가격은 때로 원가의 5,000%에 달한다. 룩소티카의 높은 가격 정책에 대항해 가격을 낮췄던 오클리는 룩소티카의 훼방에 유통 채널을 잃고 결국 적대적 인수를 당했다.


기술 기업의 공룡화는 더 큰 문제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의 기업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고, 경제 뿐 아니라 온갖 영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저자는 “불과 몇 사람이 내리는 결정이 모든 사람에게 너무도 막강한 힘을 행사할 경우 진정한 지배자가 과연 누군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90건 이상, 구글이 270건 이상 인수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정부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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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경제 독재를 계속 허용하면 결국 자유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정치 독재가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역사의 시계를 조금만 돌려보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사건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1930년대 세계 주요국들이 저마다 독점 기업과 국가 대표급 기업을 육성한 결과는 대공황과 독재자의 출현, 세계 대전을 낳으며 국제적 카르텔을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저자는 간단한 답은 없지만 먼저 국가와 세상이 합병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합병 기준을 높이고, 합병이 혁신을 억누르거나 공공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도록 부담을 안기라고 제안한다. 의심스러운 합병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안에 반경쟁적 행위가 적발되면 해체도 불사하라는 강수를 둬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 정부가 히드로·가트윅을 포함한 7개 공항 합작체에 대해 공공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며 시장조사법을 근거로 해체를 제안하자 오히려 서비스 품질이 더 높아졌던 것이 좋은 예다. 현재 미국에서 반독점 소송이 진행 중인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왓츠앱 인수합병 건에 대해서도 이들이 해체되면 사생활 보호 등 품질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고 책은 전망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호소한다. “가진 자에게 더 주는 정책은 위험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힘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정부의 힘과 결탁한 사적 권력과 싸워야 한다.” 1만6,000원.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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