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그린뉴딜에 탄소중립까지...수립 내내 ‘환경’에 휘둘린 ‘전력 안정'

[불안한 전력수급계획안]

환경 검증·평가 거치면서 '9차 계획안' 21개월이나 걸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목표치 늘리고 脫 탄소 반영

"탄소중립 위해 되레 전력 2배 필요...선후 뒤바뀌어" 지적도

산업통상자원부가 24일 공청회를 개최하고 공개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은 전력 수급 안정을 목적으로 수립되는 행정 계획이다. 그러나 9차 전력계획안은 수립 과정 내내 전략환경영향평가와 그린 뉴딜, 최근의 탄소 중립까지 잇따른 환경 검증과 환경 정책에 휘둘려 정작 ‘전력 안정 확보’라는 본연의 취지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잇단 환경 정책에 법정 시한 넘겨

계획 기간이 올해부터 오는 2034년까지인 9차 전력계획안은 당초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3월 수립을 시작해 지난해 말 끝이 났어야 했다. 한마디로 올해를 포함한 계획이 연말이 돼서야 나온 것으로, 사실상 법정 시한을 어긴 셈이다. 이처럼 시간이 오래 걸린 데는 지난해 최초로 도입된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정부 계획 수립 시 환경 보전 계획과 부합하는지 여부 등을 평가하는 것으로, 결국 환경 보존 관점에서 전력 계획을 검증해야 하는 만큼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에 맞추면서도 현 정부에 재정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골머리를 앓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력 당국인 산업부 내부에서도 전력 계획이 경제성뿐 아니라 환경성·안정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시한 내 발표가 어려울 정도로 검증이 오래 걸리는 데 대한 회의론이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공청회에서 윤요한 산업부 전력산업과장은 “9차 전력계획안 발표가 늦어진 데 대해 양해 말씀 드린다”면서도 “처음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거치며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올 들어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으로 마련된 그린 뉴딜을 거치며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 수치가 수정됐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핵심인 그린 뉴딜 방안을 9차 전력계획안에 반영하느라 시일이 더 소요된 것이다. 산업부와 환경부는 지난 7월 그린 뉴딜 방안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지난해 12.7GW에서 2025년 42.7GW로 3배 이상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34년까지가 기간인 9차 전력계획안에 중간 목표치가 새로 설정된 것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당시 그린 뉴딜 방안을 발표하며 “그린 뉴딜 실현을 위해 필요하다면 전력 계획 등 하부 목표들을 수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에 따른 ‘탈탄소’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9차 전력계획안이 온실가스 감축에 미진하다는 비판이 환경 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세게 제기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삼척 1·2호기, 강릉 안인 1·2호기 등 건설 중인 석탄 발전소를 아예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며 9차 전력계획안이 또 한 번 휘둘리기도 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이런 식이라면 10차 전력 계획도 시한을 넘기며 질질 끌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산업부는 2022년 말까지 10차 전력계획 수립을 완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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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아닌 ‘8.5차’ 계획이라 불러야”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며 ‘안정적인 전력 확보’라는 전력 계획의 정책 취지 자체가 흔들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원전·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가 핵심인 9차 전력계획안은 2034년까지 가동 연한 30년이 도래하는 석탄 발전 30기를 폐지하고 현 석탄 발전기 60기 가운데 절반인 30기만 남기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석탄 발전의 설비용량은 올해 35.8GW(58기)에서 2034년 29.0GW(37기)로 감소한다. 원전은 신규 및 수명 연장 금지 원칙에 따라 신한울 1·2호기가 준공되는 2022년 26기로 정점을 찍은 후 2034년까지 17기로 줄어든다. 결국 둘을 합해 발전량 비중이 66%(지난해 기준)인 발전원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이 빈자리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2034년 77.8GW로 올해보다 4배 가까이 늘리고, 보조 전원인 액화천연가스(LNG) 역시 5년 뒤 58.1GW까지 확대해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실제 9차 계획안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의 2034년 총 설치 용량(정격 용량)은 77.8GW이지만 최대 전력 수요(피크) 기여도를 감안한 실효 용량은 10.8GW로 13%에 그친다. 재생에너지를 보조할 LNG는 1GW당 온실가스 254만 톤을 배출해 탄소 중립 달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마음대로 늘릴 수도 없다. 이날 공청회에서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 간헐성에 대응하기 위해 LNG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온실가스 배출 우려도 분명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등 친환경 기술 개발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탄소 중립을 위해 전력 수요가 현재보다 2배 이상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탄소 중립은 휘발유·디젤·가스 등 기존 에너지를 줄이라는 것인데 그러면 전기에너지가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다”며 “9차 전력계획안은 정부 스스로 세운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탈원전이 시작된 8차 전력 계획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한 ‘8.5차’ 계획에 그친다”고 말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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