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지난달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한 ‘온: 클래식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임동혁’은 기존의 온라인 스트리밍과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의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특정 연주자와 파트의 음을 강조해 들을 수 있는 멀티 음향 기능이다. 포디엄 위, 객석, 악기 파트별 자리 등 각각의 시점에서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소리를 경험할 수 있어 클래식 공연에서 중요한 ‘현장의 생생함’을 제대로 담아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음향감독으로서 최상의 선율을 오롯이 담아낸 이는 ‘소리 장인(匠人)’이라 불리는 톤마이스터 최진. “음식(연주)의 맛을 훼손하지 않고 더 먹음직스럽게 담아내는 일이 바로 톤마이스터의 일”이라는 그를 이태원 음악문화공간 스트라디움에서 만났다.
톤마이스터(Tonemeister)는 음반을 녹음할 때 복잡한 조율 과정을 거쳐 ‘최상의 소리’를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현장의 규모나 공간 모양, 악기 구성, 배치 등에 맞춰 녹음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주자와의 교감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뽑아내는 것도 톤마이스터의 일이다. 예민한 귀와 따뜻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두루 갖춰야 하는 직업이다. 최 감독은 “연주자가 뽑아낼 수 있는 그 이상을 요구하는 일인데, 거장들에게 ‘한 번 더’, ‘이 부분은 이렇게’ 하고 주문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며 “쉽게 가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이라고 웃어 보였다. 연주자나 녹음 공간마다 다른 특성과 환경을 엮어 ‘이 소리다’ 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의 짜릿함은 고된 녹음과 녹음 후 하루 10시간 이상을 끌어안고 씨름해야 하는 후반 작업의 고단함을 일거에 날려준다. 그는 “내게는 이때의 감정이 출산의 기쁨”이라고 설명했다.
최 감독은 대학에서 호른을 전공했다. 이후 지휘를 공부하러 유학 간 독일에서 톤마이스터 분야의 가능성과 매력을 느끼고, 뒤셀도르프 슈만 음대에서 레코딩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어릴 때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듣고,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면서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동했다”며 “하나(의 악기)보다는 여러 개를 보고 가는 게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클래식에 대한 탄탄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서일까. 최 감독은 그동안 피아니스트 백건우·손열음·임동민, 소프라노 조수미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 그리고 도이체 그라모폰(DG)·워너 클래식스 등 유수의 음반사들과 작업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19 여파로 주요 클래식 공연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그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아졌다. 코리안심포니와의 ‘온: 클래식’ 외에도 최근 진행된 서울시향 ‘합창’의 글로벌 온라인 생중계, 서울시향-EBS의 가상현실(VR) 오케스트라 콘텐츠 제작의 오디오 작업 등을 총괄했다. 최 감독에 따르면 온라인을 통해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지금이야말로 고품질 콘텐츠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온라인상에서 양질의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변별력도 확실히 향상됐죠. 연주의 질을 깎아가며 온라인으로 선보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해요.” 연주자와 관객이 만족할 고품질 콘텐츠로 승부를 겨뤄야 위기 이후 새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 감독은 몇 년 전부터 3D(입체 음향) 녹음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4K UHD 방송이 시작되면서 3D 사운드 분야가 주목받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관련 장비가 부족한데 콘텐츠는 만들어 뭐하냐’, ‘콘텐츠도 없이 장비를 왜 만드느냐’는 줄다리기가 이어진 탓이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최 감독은 “아마존이 관련 서비스를 시작하고, 저렴한 전용 스피커도 개발되면서 세계 유수의 음반사들이 3D 음원을 원하고 있다”며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면 그만큼 주목받기 좋은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는 만큼 3D 음향 서비스가 이른 시일 내에 국내에도 안착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