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업주는 무한책임, 공무원은 처벌 축소...당근없이 의무만 강조

[브레이크 없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정부 수정안 보니]

의무 등 불명확해 과잉규제 초래..소송비용 부담 눈덩이

부처·지자체장제외 형평성 논란..직무유기 처벌기준'모호

기업투자 축소 → 고용악화→경제침체 '악순환' 불보듯

고용노동부·법무부·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 부처가 경영계의 의견을 반영해 기존 의원 법안을 일부 수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경영계는 물론 노동 전문가들도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 안보다는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이중 삼중의 과잉 입법인데다 배상 책임과 입증 책임, 재해 발생에 따른 처벌 조항이 안전 의무를 지나치게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기업 경영을 옥죌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의무 이행에 따른 면책조항은 아예 없어 ‘당근’ 없이 ‘채찍’만 휘두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3035A03 중대재해35판수정



◇위법행위 ‘불분명’한 이중 삼중 겹규제=우선 지적되는 부분은 경영 책임자와 사업주가 책임져야 할 의무 등이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정부안 3조(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에는 △재해 예방에 필요한 조직·인력·예산 등 안전 보건 경영 체계 수립 △중대한 건강 장해를 일으키는 물질 취급 작업, 추락·붕괴 등 사고 발생 위험 장소 작업 때 예방 계획 수립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 등 관계 법령에 따른 개선·시정 등 사항에 대한 조치 △재해 원인 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의 수립 △위험 방지 관리·감독 조치를 경영 책임자와 사업주, 법인 등에 의무화했다.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고 하지만 조항에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중대재해 발생 때 기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등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대원칙은 만들어졌지만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어떤 의무를 위반해 처벌을 받는지는 불명확하다”며 “사업주 등이 지켜야 할 의무를 정교하고 세분화해 만들지 않으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자칫 회사 경영만 악화시키는 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도 “기업 책임자와 사업주의 고의가 있었는지에 대해 유해 위험 방지 업무 범위 등도 명확하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형법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 등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가해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이중 삼중의 처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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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유기 범위도 ‘모호’…정부 부처는 왜 빼나=중앙행정기관장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중대재해 발생 때 책임을 지는 ‘경영 책임자’에서 삭제했다는 점도 문제다. 행정 영역이 민간과 달리 관리·지배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재임 기간도 짧아 중앙행정기관·지자체장을 포함하는 게 무분별한 행사 책임만 부과시킬 수 있다는 게 정부 측의 입장이지만 이는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는 지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민간에 모범을 보여야 할 중앙행정기관·지자체가 오히려 책임 소재에서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존 ‘결재권자인 공무원’에서 ‘법령에 따른 인허가권 또는 감독권을 가진 공무원이 형법상 직무유기죄를 범했을 경우’로 바꾼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직무 유기라는 영역이 불분명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변호사는 “고의 유무에 따라 어디까지가 직무 유기인지를 두고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고의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법을 토대로 처벌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도 “직무 유기 혐의가 인정된 공무원에 대해서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적용하자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으나 현실적이지는 않다”며 “직무 유기 혐의가 법원에서는 거의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근 없는 채찍…의무만 강조=전문가들은 의무의 명확성 확보 등과 함께 면책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적용받는 기업들에 동기를 부여하자는 차원에서다. 채찍이 아닌 당근도 있어야 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시설 개선이나 안전 조치에 주력했다면 면책해주는 조항을 만들어 개선 노력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야 하지만 정부안에는 없다”며 “의무만 강조해 처벌에만 급급하다면 결국 기업들은 소송과 재판을 오가며 각종 비용만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면책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면 기업은 징벌적 배상만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각종 리스크를 지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려는 사업주는 없을 것”이라며 “신규 투자하려는 기업이 줄면서 결국 고용 악화 등 국내 경제를 침체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현덕·조권형·손구민기자 always@sedaily.com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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