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새해비나리

임재원 국립국악원장




국악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비나리’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새해나 큰 행사의 시작을 여는 공연인 비나리는 앞날의 행복을 ‘빌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우리의 전통 연희 종목 중 하나로 흥겨운 사물 가락과 어우러져 신명을 더한다. 나쁜 기운을 씻어내는 살풀이와 액풀이, 모든 일이 잘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축원 덕담 등으로 구성된 비나리의 가사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다양한 생활 속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5월에는 단옷날 미인들의 그넷줄로, 7월에는 오작교 다리를 놓던 까치 머리로, 8월에는 한가위 송편을 담은 쟁반 굽으로, 10월에는 뜨거운 팥죽 등으로 한 해의 액운을 풀어낸다는 내용이 그러하다.

21세기를 사는 이들에게는 비나리의 내용이 과학적인 근거와는 거리 먼 무엇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생활 속 이야기를 흥겨운 가락에 녹여 희망찬 공연으로 승화한 선조들의 삶의 자세는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큰 위로로 다가온다.


천 년의 숨결을 간직한 국악에는 비나리가 전하는 희망과 위로 외에도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가 응축돼 있다. 아정함과 예악 정신을 품은 ‘정악’에서는 한국 정신문화의 높은 품격을, 자유분방함 속에 질서를 갖춘 ‘민속악’에서는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호젓하고도 역동적인 ‘전통 무용’에서는 시대를 초월한 우리 문화의 생동감을,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변화를 수용하는 ‘창작 국악’에서는 우리 문화의 폭넓은 확장성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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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례 없던 전염병 앞에 전 세계가 무력하게 지난 1년의 시간을 보냈지만 이런 위기 가운데에서도 한국의 문화는 세계인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며 그 위상을 높여 큰 귀감이 됐다. 특히 지난해 젊은 국악인들이 선보인 색다른 실험과 도전이 국내외로 큰 관심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 음악에 깊게 뿌리 내린 정신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확신한다.

2021년 새해에는 어떤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보다는 염려가 많아지는 요즘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혜와 뜻을 모으며 지금도 조금씩 출구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궁중무용 ‘처용무’를 통해 나쁜 기운을 쫓으려 했고 진도 앞바다에서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부르며 어려움을 극복했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우리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더욱 단단하게 하리라. 비나리의 축원 덕담을 전하며 신축년 새해에도 국악의 향기가 천리만리 퍼져 많은 이들에게 행복이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여러분들 만사(萬事)가 대길(大吉)하고 백사(百事)가 여의(如意)하고 마음과 뜻 잡순 대로 소원성취 발원(發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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