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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토종 '역차별' 법에...크래프톤 IPO '대박'은 中 텐센트로

‘10%룰’ 등 규제로 국내 PEF 유니콘 투자 힘들어

쿠팡 등 10개 유니콘 대부분 해외 투자 유치 ‘일색’

“PEF의 스타트업 투자 길 터주는 법안 정비 시급해”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인 크래프톤의 상장을 앞두고 때아닌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른바 ‘10%룰’이나 이사 선임 요건 등 국내 사모펀드만 옥죄는 제도상 장애물 탓에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성장의 과실이 대부분 해외로 흘러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규제와 감독 시스템을 개편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중국계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인 힐하우스캐피탈은 지난해 1,200억 원을 투입해 크래프톤의 주식 22만주 가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하우스가 보유한 주식의 지분율은 2.7% 가량이다. 힐하우스는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과 마켓컬리 등 국내 주요 스타트업의 투자자 이기도 하다.


1인칭 슈팅 게임(FPS)인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은 올해 IPO 시장의 최대 기대주다. 지난해 말 출시한 대규모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MMORPG)인 ‘엘리온’이 흥행할 경우 상장 기업가치가 30조 원이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상장에 성공할 경우 힐하우스도 돈방석에 앉게 된다.

문제는 힐하우스의 투자 당시 국내 투자자가 철저히 배제됐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 벤처캐피탈(VC)가 투자하기엔 투자금 규모가 너무 크다. 국내 대부분의 VC는 스타트업의 초기인 시리즈A·B·C단계의 소규모 투자만 할 수 있을 정도로 펀드 규모가 영세하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VC 펀드 총 993개 중 3,000억 원 이상 규모의 펀드를 보유한 곳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해 한국투자파트너스와 소프트뱅크벤처스뿐이다.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에 수천 억 단위를 투자를 할 수 있는 VC가 전무한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최근 정부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이란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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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원의 자금력이 쥐고 있는 PEF가 있지만 규제 탓에 쉽지 않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국내 PEF는 투자 대상 기업의 지분 10%를 이상을 취득하거나 이사를 선임하는 방법으로 반드시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외부 투자자의 경영 간섭을 꺼리는 스타트업의 특성과도 맞지 않다. 통상 스타트업은 그때그때 성장에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위부에서 조달한다. 이 때문에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이라고 하더라도 지분율 10% 미만인 수백억 단위의 투자유치가 많다. 10%룰에 갇힌 PEF에게 유니콘 기업 투자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유니콘 기업 성장의 과실도 상당 부분 해외 흘러나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크래프톤 상장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텐센트다. 텐센트는 자회사 이미지 프레임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지난 2018년 4,600억 원에 크래프톤의 주식 83만2,134주를 사들였다. 이후 추가 투자 등을 거쳐 지난해 9월말 기준 132만8,328주(16.4%)로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에 이은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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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2018년 어렵게 3,600억 원 규모 투자에 성공하면서 여기에 출자한 국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상장으로 인한 투자차익을 거둘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을 뿐이다. IMM인베스트먼트와 JKL파트너스 등은 공동투자 펀드를 꾸려 한 자리의 이사만 선임하는 궁여지책을 통해 크래프톤에 투자했다. 이들 컨소시엄이 설립한 밸리즈원유한회사의 지분율은 6.9%다.

기업가치가 1조 원이 넘는 국내 유니콘 대부분은 크래프톤 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다. 1호 유니콘인 쿠팡은 초기 소규모 투자를 제외하면 4조 원가량의 누적 투자금 대부분을 해외 투자자로 채웠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금액만 3조 원이 넘는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4조7,000억 원 기업가치에 사들인 우아한 형제들도 IMM 등의 초기 투자 150억 원가량과 네이버의 투자금 35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대부분이 해외 투자 유치였다. 패션 플랫폼 기업 첫 유니콘인 무신사도 미국 VC인 세콰이어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국내 유니콘 10개사 해외 투자유치 현황> 자료:사모펀드협의회<국내 유니콘 10개사 해외 투자유치 현황> 자료:사모펀드협의회


국회에 계류 돼 있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만 출자할 수 있는 ‘전문투자자 사모펀드’를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펀드에 한해 10%룰 등을 철폐하되 나머지 사모펀드의 규제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개정되면 유니콘 기업이 해외 투자자가 아닌 국내 PEF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일각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CVC 도입보다 PEF의 모험자본 역할을 확대하는 게 먼저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한 국내 대형 PEF의 관계자는 “힐하우스는 지난해 크래프톤의 1,200억 원 규모로 2.7% 구주를 수차례에 걸쳐 이사 선임 없이 인수했다”며 “국내 PEF는 10% 이상 지분을 취득하거나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법적 조건을 충족할 수 없어 손 놓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법률 개정이 빨리 돼야 국내 자본시장이 유니콘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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