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전쟁의 공포'가 평화를 만든다

■ 권력 쟁탈 3,000년

조너선 홀스래그 지음, 북트리거 펴냄

로마 제국 역사 절반·中은 1,100년간 전쟁

권력·교역·종교 갈등이 죽음·희생 내몰아

욕망 가득한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 쉽잖아

삶 파괴하는 고통 두려워해야 평화도 지속

중세 유럽 기사의 갑옷.중세 유럽 기사의 갑옷.



평화는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다. 누구나 평화로운 세계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쟁의 연속이다. 중국은 3,000년 역사 중 1,100년 이상 전쟁을 치렀다. 로마 제국의 역사도 절반 이상이 전쟁으로 점철됐다. 1776년 수립된 미 합중국이 지금까지 전쟁을 벌인 시간은 100년이 넘는다. 한반도 역사도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외세 침략을 당하고 물리치길 반복했고, 최근에는 같은 민족끼리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다 휴전 중이다. 현재 이 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포탄이 날아가고,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와 번영을 이상으로 꼽으면서도 왜 인간은 역사상 단 한 순간도 전쟁을 멈춘 적이 없는 걸까. 무엇이 인간을 죽음과 희생이 자명한 전쟁터로 끊임없이 몰아넣는 것일까.

조너선 홀스래그 브뤼셀 자유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는 그의 저서 ‘권력 쟁탈 3,000년’을 통해 이 물음에 답한다. 기원전 1,000년부터 21세기 초까지 3,000년 간 시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반복돼온 전쟁의 패턴을 정리한 이 책은 인간이 어떤 이유로 전쟁의 길을 선택했는지 알려주는 동시에 평화는 결코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님을 강조한다.


책은 250년 단위로 역사를 나누되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도록 각 시기마다 가장 중요했던 지역에 초점을 맞췄다. 지역 선정은 인구 규모와 병력,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 증가 등 역사적 증거에 기초했다.

중국 진시황릉 병마용갱.중국 진시황릉 병마용갱.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전쟁이 시작되는 ‘몇 가지 반복되는 원인’이 거듭 등장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지배자의 권력과 야심이 전쟁을 부른다. 3세기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들은 권력이 강해지자 로마 제국 공격을 결정했다. 중앙아메리카의 테오티우아칸은 마야 지역으로 군사를 보냈다. 권력이 약해질 때도 전쟁이 발생했다. 정치체가 힘을 잃으면 국내에서 반란과 소요가 발생했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였다가 더 큰 혼란에 빠지는 일이 허다했다.


전쟁이 벌어지는 또 다른 원인은 ‘안보’에 있다. 한 나라가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하지 않더라도 안보 태세를 강화하면 이웃 국가는 불안을 느낀다. 특히 현재처럼 국경이 명확하지 않던 시대에는 불안감이 더 컸다. 결국 이 과정에서 긴장이 증폭하다 폭발하면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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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로 장악을 통해 수익을 독차지하려는 욕망도 전쟁을 야기했다. 파르티아 제국, 쿠샨 제국, 흉노 연합국 등은 실크로드를 차지하기 위해 피의 전쟁을 치렀다. 바닷길에서도 싸움은 수시로 벌어졌다. 동남아시아 촐라 왕국은 인도양 끄라 지협을 차지하기 위해 스리위지야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1204년 동로마의 제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는 십자군을 그린 다비드 오베르의 15세기 작품.1204년 동로마의 제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는 십자군을 그린 다비드 오베르의 15세기 작품.


또 하나 전쟁의 출발점은 종교였다.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추구한다면서도 종교는 늘 성전(聖戰)을 일으켰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교 등 그 어느 종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늘 손에는 무기를 쥐고, 심장에는 도덕적·문화적 우월감을 품은 채 상대를 겨냥했다. 심지어 종교가 같은 정치체끼리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종교 내 권력 다툼도 싸움을 불러일으킨 요인이다. 서로 다른 분파가 상호 적대하며 칼이나 총을 겨누길 서슴지 않았다. 사랑과 자비를 내세우면서도 동시에 피를 부르는 종교의 모순이 전쟁을 통해 드러났다.



저자는 3,000년 전쟁 역사를 구석구석 훑어 내려간 이유가 뭇사람의 삶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이지만 전쟁으로 삶이 가장 많이 바뀌는 쪽은 늘 평범한 사람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동시에 각 시대에 전쟁을 멈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외교가들의 움직임에도 시선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쟁을 막는 이상적이고 명확한 방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과 공포의 작동 패턴을 보면 전쟁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서고금 상관 없이 드러난 전쟁의 반복적 원인을 제대로 인지하고,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겪는 고통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평화의 시대를 조금 더 길게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게 저자의 바람이다. 3만7,000원.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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