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보수진영 인사들과 접촉을 늘리자 제1 보수야당인 국민의힘이 강한 견제에 나섰다. 안 대표는 보수진영의 텃밭 대구에서 유력 대선주자인 홍준표 무소속 의원(전 자유한국당 대표)을 만나고 이어 부산까지 내려가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안 대표가 단일화를 넘어 중도·보수진영의 새 체제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단일화 후보를 국민의힘 인물로 내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안철수 얘기는 언급하지도 말라”며 경계령을 내렸다.
보수 텃밭 대구서 홍준표·조계종 만나고 부산行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부산시장 예비후보인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 후보의 만남이 취소됐다. 안 대표는 전날 오후 7시께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이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소를 격려차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안 대표가 부산으로 온 뒤 갑자기 두 인사의 만남이 취소됐다.
이 후보는 김 위원장이 “자신이 한 말을 실천하는 강력한 의지의 여성 정치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한 인물이다. 그런 이 후보가 안 대표를 만나려 하자 당 내부에서 단일화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에서 만남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었고 일정을 취소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이 안 대표의 광폭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안 대표는 지난 10일 충청지역이 기반이었던 자유민주연합 상임고문을 지낸 보수진영 원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11일에는 돌연 보수진영의 텃밭인 대구에 있는 동화사를 방문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우연하게도 홍준표 의원과 ‘깜짝 만남’이 이뤄졌다. 동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상징적인 어른인 진제 종정 스님이 있는 곳이다. 보수진영 유력 대선주자와 불교계의 어른, 안 시장이 운 좋게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인 것이다. 안 대표측은 이를 두고 “우연히 만났다”고 말했지만, 대구를 찍고 안 대표가 부산으로 내려가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우연이 아니다”라는 판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안 대표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들의 만남이 취소된 것이다.
安 중심 단일화·선거 승리 땐 김종인 체제 소멸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 대표가 선을 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행보가 단순히 서울시장 선거만을 겨냥했다고 보기엔 활동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다. 최근 3일간 일정으로 접촉하거나 만나려 했던 인사들을 보면 지역이 충청, 대구·경북(TK), 부산·울산·경남(PK)이고, 나아가 불교계까지 아우른다.
안 대표가 야권단일화를 넘어 중도·보수진영 새 체제의 판을 짜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6월 출범한 김종인 비대위는 오는 4월 보궐선거까지가 임기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8월 임기와 관련해 “나는 임기 연장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소정의 과제를 마치면 원래 자연인으로 돌아간다고, 그런 것이 저의 약속이니깐 믿으면 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체제가 연장되려면 보궐선거 이후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당원 70%·여론조사 30%)돼야 한다. 이는 김종인 비대위가 내세운 야권 후보가 서울시장에서 승리해 당원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안 대표가 ‘1인 정치’로 야권 단일후보가 되고 선거에서 이기면 김종인 비대위가 연장될 명분도 희석된다. 4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꾸려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무엇보다 새로 들어설 지도부는 차기 대통령선거를 맡는다. 대선주자를 뽑을 경선규칙(룰)도 지도부가 정한다. 안 대표와 홍 대표가 우연히 만났다고는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간 안 대표의 행보와 달리 정치적인 타이밍과 메시지가 달라지고 있다”며 “보수진영 인사가 조력하지 않고서는 갑자기 나오기 힘든 정치적 움직임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중심 단일화, 安 얘기 꺼내지 말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지도부는 안 대표가 보수진영 텃밭과 인사들을 만나며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전날 비공개회의에서 지도부에 “안 대표를 아예 언급하지 말라”며 “이러쿵저러쿵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이러다 지난 4·15 총선 때처럼 콩가루 정당이 된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진석 공천관리위원장이 국민의당과 ‘당대당 통합’을 말한 것을 지적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3석에 불과한 국민의힘에 저자세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3자 구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30% 중반을 향해가는 국민의힘 지지율을 볼 때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날 라디오를 통해 “(당대당 통합은)책임있는 자리에서 합당까지 말한 것은 좀 많이 나갔다”며 김 위원장의 독자 후보론을 지원했다. 국민의힘의 강경한 기류를 볼 때 안 대표와 단일화를 둔 힘겨루기는 선거 막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야권 단일화를 넘어 차기 대선까지 얽힌 싸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자유한국당 김문수·국민의당 안철수)처럼 서로 양보를 요구하다가 단일화가 불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서울 시장 선거에 있어서 야권이 분열되어서 민주당이 어부지리 하면 안 된다는 데 공감한다”며 어떻게든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이어 “(단일화는) 연대하고 선거 이후에 통합하는, 여러 방식이 있다”며 ‘당 대 당 통합’ 외에 다른 방식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