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인 미만 사업장들만 일감을 수주할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당장 중소·중견 기업은 수주 절벽 앞에 서 있습니다.”
한 경제 단체 고위 관계자는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의 국회 통과를 두고 이 같은 우려를 전달했다. 중대 재해 발생 시 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이 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3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는 등 각종 유예 규정을 뒀다. 이에 재계와 노동계 모두가 보완 입법을 요구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기업들은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에 들어갔다. 사고 발생 시 원청과 하청 안전 담당자부터 경영 책임자까지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만큼 원청이 하청을 선정할 때 기업 규모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 적용 예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이어야 일감을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과 아예 원청과 함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50인 이상 사업장만 일감을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 등이 나오고 있다. ‘원청’ 대기업들은 결국 ‘안전’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산재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최대한 안전한 규모가 큰 기업이 선호 대상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2019년 국내 제조업의 산재 사고 사망자 206명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64명으로 79.6%를 차지했다. 5인 미만 사업장도 42명(20.4%)이나 됐다.
재계에서는 주52시간제도 등 기업 규모(5인·50인·300인)에 따라 유예 기간을 두는 기업 규제가 기업 규모에 따른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설익은 법안을 밀어붙이다 보니 현장에서는 법 적용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기업 규모를 쪼개는 등 풍선 효과만 낳는다는 것이다. 이번 중대재해법도 기업들이 종사자 수를 늘려야 할지 줄여야 할지 기로에 서게 됐다. 해외로 생산 기지 이전만 부추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 새해부터 그 누구도 만족하지 않은 법안을 내놓은 국회는 벌써부터 다음 달 유통법·집단소송제 등 또 다른 기업 규제법 통과 준비에 돌입한 모양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입법에 기업들만 지쳐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