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결혼해 국민임대주택에 입주한 A씨 부부. 무직이었던 부인 A씨는 최근 한 중소기업에 취업 기회를 얻게 됐지만 입사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올해 국민임대 재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A씨가 맞벌이를 하게 되면 가구 소득이 크게 늘어 퇴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A씨는 “달라진 소득기준 탓에 어차피 퇴거는 불가피할 것 같다”며 “주변 전셋값이 너무 올라 마땅히 이사 갈 곳을 찾기도 어렵다. 열심히 일하니 오히려 살 곳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공임대 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공공임대 입주민들의 주거 안정성은 여전히 위태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과 동떨어진 소득기준 등의 이유로 공공임대에서 생활 여건을 향상시켜 가면서 수 년 간 안정적으로 거주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산층까지 공공임대로 끌어안으려 하기 보단 민간 영역으로 역할을 분산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정부는 1~2인 가구의 공공임대주택 소득기준을 개선(1인 가구 20%포인트, 2인가구 10%포인트 상향)하는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이달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3월부터 1·2인 가구가 ‘3인 이하 가구’ 소득기준이 아닌 개별 소득기준을 적용받게 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1~2인 가구의 공공임대 입주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자 소득기준을 일부 완화한 것이다.
이를 감안해도 공공임대 입주를 위한 소득기준은 1인 가구 월 185만원, 2인 가구 306만원 수준이다. 행복주택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1인 가구는 월 211만원, 2인 가구는 437만원(맞벌이시 525만원)이다. 최저시급으로 주 40시간을 근무할 경우 182만원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최저임금을 가까스로 넘는 정도여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공임대에 사는 동안 월급이 오르거나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직장으로 옮길 경우 순식간에 퇴거 대상이 되는 셈이다.
특히 기존에 3인 이하 소득기준을 적용받던 1, 2인 가구가 대거 기준 초과 상태가 되면서 올해부터 퇴거 대상이 되는 가구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 2회까지 계약 연장을 해주기로 했지만 이후에는 소득이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 한 퇴거가 불가피하다. 1인 가구였다가 2인 맞벌이 가구가 된 A씨 사례 같은 경우라면 소득기준 초과비율이 50%를 넘게 돼 1회밖에 재계약을 할 수 없고, 그나마도 보증금·임대료에 40% 할증이 붙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행복주택 방문 현장에서 “굳이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공공임대주택으로도 충분히 좋은 주택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공임대에 살면서 소득과 재산을 늘려 나갈 수 있다는 말과 달리 실제로는 열심히 살수록 주거 불안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심지어 재산과 차량 등 조건도 미충족시 퇴거 사유가 되기 때문에 재산을 늘려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이미 대상 기준을 초과한 상태인 이들 세입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민간 시장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민간 시장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공공의 역할에만 집중하려 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공임대 정책은 주거 취약계층에 집중하고 각종 규제를 풀어 민간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주거 안정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저렴한 가격의 공공임대주택을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규제를 풀어 시장의 수급 문제를 해소하고 민간시장에서 수요를 흡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