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에서 백신은 ‘게임 체인저’다. 감염병을 종식하고 국가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대안이다. 화이자·아스트라제네카·얀센 등 글로벌 제약 기업들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직후 백신 개발에 뛰어든 이유다. 반면 ‘토종 백신’은 아직도 임상 초기 단계다. 백신은 치료제에 비해 더 많은 비용과 기술력이 필요하다 보니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기업의 개발 속도는 더딘 게 사실이다. 정부는 이르면 올해 말께 국산 백신이 개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더디더라도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 백신을 보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백신 주권’은 코로나19뿐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감염병 종식이 늦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전 세계가 확보해야 하는 백신 물량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자칫 일부 국가에서 자국이 개발한 백신의 수출을 막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백신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의 감염병 종식은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다. 화이자가 최근 유럽연합(EU)에 물량 납품 시일을 못 맞춘다고 선언하면서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 캐나다는 선 구매한 백신이 모두 승인될 경우 전체 인구의 4배에 달하는 물량을 확보하게 되지만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 선진국의 백신 사재기는 이미 국제 문제로 불거졌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 18일(현지 시간) 이사회에서 “최소 49개 부국은 지금까지 백신 3,900만 회분을 접종했지만 최빈국 중 한 곳은 2,500만 회분도, 2만 5,000회분도 아닌 단 25회분만 받았다”고 말했다. 부유한 일부 국가가 백신을 ‘싹쓸이’하다 보니 최빈국은 물론 선 구매를 계약한 국가에서도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오는 11월까지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을 약속했지만 전문가들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전병율 차의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백신을 개발한 기업이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물량 부족으로 자국 내 백신 접종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공급할 물량을 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코로나19가 독감처럼 유행성 질환으로 굳어지면 현재까지 확보한 6,600만 명분보다 더 많은 백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다행히 국산 치료제는 상용화가 임박했다.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주’는 임상 2상을 마치고 식약처에 조건부 허가를 신청했으며 GC녹십자 역시 올 3월 현재 개발 중인 코로나19 혈장 치료제의 임상 전기 2상 결과를 도출하고 4월께 조건부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국산 백신 개발에 정부가 국방 산업 수준으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는 “백신 주권은 식량 주권과 같다”며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방위 산업에 국가적인 지원을 하듯 국가가 백신 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백신과 치료제 기업에 대한 정부 투자금을 일부 회수하지 못하더라도 백신 주권을 확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