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정부가 지난 20일 출범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지형도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글로벌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그르치지 않도록 유연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국가 위상이 높은 독일이나 일본도 중국의 생떼에 얼굴을 붉히지 않고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주력 산업인 자동차 분야에서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연한 대중국 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고 일본도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여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탄력적인 대응에 나선다.
한국 입장에서도 중국은 놓칠 수 없는 교역 상대국이다. 21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한국에 수출한 금액은 1,125억 460만 달러(약 124조 원)에 달했다. 이는 중국 전체 수출에서 4.3%를 차지한 금액이다. 수출액은 미국·홍콩·일본·베트남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홍콩은 중국과 특수한 관계이며 베트남도 미중 갈등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수출이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빅3에 한국이 포함된다. 그만큼 한국이 중국 무역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중국의 지난해 한국산 수입은 1,727억 5,980만 달러로 전체 수입에서 8.4%나 됐다. 대만·일본에 이어 3위다. 특히 한국산 수입은 첨단 부품·소재가 많다는 점에서 산업화가 필요한 중국으로도 절실한 문제다.
베이징의 외교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미중 갈등이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최근 중국 정부와 관변학자들이 잇따라 한국에 우호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은 중국이 단순한 경제적 이익 측면에서가 아니라 남북 관계의 개선에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의 한 관광 업계 관계자는 “2016년 이후 사드 문제로 한국 관광 시장이 끊긴 중국 관광 업계도 큰 타격을 받았는데 정부에 반발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국과 강대강 대결을 펼치는 상황에서 적어도 북한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창구로서 중국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문일현 정법대 교수는 “한국 외에도 적지 않은 국가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딜레마를 갖고 있다”며 “미중 모두가 특정 국가를 향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도록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중 외교에서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중 간 국력의 차이가 분명한 상황에서 한국이 자신의 주장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불리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다. 류루이 인민대 교수는 “한중 관계는 남북이나 북미·북중 간의 관계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이미 성숙했다”면서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 밀접한 이웃 국가인 한중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 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