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듬해인 201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체결된 ‘이란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02년 이란 핵 문제가 불거진 뒤 유엔 제재를 거쳐 2015년 어렵사리 타결됐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서방이 주도하는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 기후변화협약,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도 지시했다. 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오바마 케어’도 폐지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오바마 정책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ABO(Anything But Obama)’라고 비판했다.
이에 바이든 새 행정부의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임기 첫날인 20일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고 WHO 탈퇴 절차를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멕시코 부근 국경 장벽 건설을 중지시키고 캐나다산 원유를 미국으로 수송하는 송유관 건설 허가도 철회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밀어붙였던 주요 정책들을 한꺼번에 뒤집은 것이다. 트럼프 정책 지우기인 ‘ABT(Anything But Trump)’ 실행에 나선 셈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전임 행정부의 정책을 폐기해 각각 ‘ABB(Anything But Bush)’ ‘ABC(Anything But Clinton)’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여론은 양극화의 길로 갔다.
어느 나라에서나 새 정권은 ‘차별화 전략’에 따라 직전 정권의 정책을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국가 장래를 위해 기본 정책과 국제 합의는 지키는 게 필요하다.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어도 주요 정책을 바꿀 때는 적법 절차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권의 사람들과 정책에 ‘적폐’ 딱지를 붙이고 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 특히 탈(脫)원전과 대북 정책 등에서 국민의 뜻을 모으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는 국민을 통합하면서 지속 가능한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
/오현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