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서울에서 9억 원(가구수 기준)을 넘어선 아파트가 사상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9억 원은 정부가 정한 고가주택 기준이다. 9억 원 초과 고가주택은 현 정부 출범 초기 10가구 중 2가구에 불과 했으나 이제 10가구 중 5가구를 넘어선 셈이다.
시장과 학계에서는 정부의 집값 정책 실패가 서울 아파트 가격을 끌어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13년 넘게 유지된 고가주택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경제가 부동산114에 의뢰해 분석한 가격대별 서울 아파트 가구수 분포 현황에 따르면 이달 22일 기준 9억 초과 가구는 66만 4,698가구로 9억이하 가구(60만 9,788)를 넘어섰다. 비율로는 9억 이하 47.8%, 9억 초과 52.2%다. 9억 초과 아파트가 더 많아진 것은 부동산114가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이다.
◇ 사상 첫 9억 초과가 더 많았다 = 부동산114 통계를 보면 현 정부 출범 당시 2017년 5월 9억 초과 아파트는 22만 9,578가구로 전체의 18.3%에 그쳤다. 10가구 중 2가구에도 못 미쳤다. 올 1월 중순 기준으로는 66만 4,698가구로 전체의 52.2%가 고가주택이다.
지난 3년 7개월 동안의 아파트 분포 변화를 금액 구간 별로 세분화 해보면 가장 가파르게 사라진 가격 대 아파트는 6억원 이하 가구다. 이 기간 동안 78만 7,277가구(62.7%)에서 24만 6,404가구(19.3%)로 54만 873가구가 사라졌다. 반면 6억원 초과, 9억원 초과,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모두 늘었다.
특히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경우 2021년 1월 현재 27만 7,068가구(비중 21.7%)다. 2017년 5월 15억 원은 물론 9억을 넘어서는 아파트까지 모두 합한 가구수(22만9,578가구)보다 많다. 결국 3년 여 전에 9억 원에 미치지 못하던 아파트의 일부 마저 현재 15억 원이라는 초고가 주택 대열에 합류했다는 의미다.
자치구별로 보면 상향 평준화는 더 두드러진다. 2017년 5월 당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북구와 관악구, 금천구, 노원구, 도봉구, 동대문구, 은평구 7개 자치구는 9억 원 초과 아파트가 한 가구도 없었다. 현재는 9억 초과 아파트가 없는 자치구는 '제로'다. 특히 9억원 초과 아파트 비율이 0% 이던 동대문구과 은평구는 신축 아파트 입주와 가격 상승에 따라 올 1월 현재 각각 32.3%, 20.9%로 급증했다. 강남구(74.2→94.4) 서초구(74.2→95.4), 용산구(43.3→90.0)는 현재 고가주택 비중이 90%가 넘는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고가주택 증가는 결국 서울 시내 대부분의 아파트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오른 결과”라며 “특히 12·16 대책 이후 9억원 초과 주택이 일부 또는 전면 대출 제한을 받으면서 9억원 이하 아파트에 수요가 몰려 9억원 위로 가격을 밀어올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 9억 고가주택 기준 13년째 그대로 = 시장과 학계에서는 9억원으로 선을 그어놓은 고가주택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정책에 비추어볼때 주택은 6억원, 9억원, 15억원 별로 각각 중저가주택, 고가주택, 초고가주택으로 분류된다. 고가주택 9억 원 기준은 2008년 이후 변하지 않고 있다.
현재 9억원은 세금 중과와 대출 규제를 가르는 기준이다. 1주택자라도 9억원을 초과하는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하고, 취득세도 3.3%로 9억 이하 주택보다 1.1%포인트 더 낸다. 규제지역에서는 담보인정비율(LTV)도 9억원 초과분은 20%로 줄어든다. 여기서 15억원이 넘어설 경우 LTV 인정비율이 0%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게 된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교수는 “9억원이라는 현행 고가주택 기준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시 6억원에서 끌어올린 이후 13년째 유지되고 있다”며 “지금은 서울에 9억원 넘는 아파트 가구수가 절반 이상인 만큼 기준을 재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임미화 전주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08년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중위 가격의 아파트를 사면 대출 등에서 정책의 지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세금이 중과되는 상황”이라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주택 상황이 다른만큼 이를 분리해 지역별 사정에 맞춰 정책을 수립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록 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