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 백색으로 빚은 테라피스…일터에 자연을 담다

서울 성동구에 자리잡은 ‘클리오’ 사옥은 멀리서 보면 마치 도심 속 거대한 조각 같다. 서울숲, 성수대교, 뚝섬역에서 바라보는 서울 풍경 속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는 흰색 건물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흰색 세라믹 타일과 유리, 최소한의 재료로 쌓아올린 높지도 낮지도 않은 건물이지만 역동적인 외관 탓일까. 건물의 인상은 화려하기만 하다. '단순하지만 화려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과 서울시건축상 대상 등 각종 건축상을 휩쓸고 있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모든 층에 테라스 둔 혁신설계

4개 층마다 엇갈려 쌓아올린 테라스

다양한 서울의 모습 감상할 수 있어

건물을 관통하는 콘셉트는 ‘대지(terra)’와 ‘사무실(office)’의 합성어인 '테라피스(terraffice)'다. 그런 만큼 건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파사드(facade)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건물 층층이 위치한 테라스다. 4개 층마다 벽 구조로 지지되는 큰 테라스가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쌓아 올려져 있고 그 사이 각각의 층에 비교적 작은 규모의 테라스가 매달려 있다. 일터에서도 땅을 밟고 외기(外氣)를 쐬며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설계자의 의도가 담겼다. 클리오 사옥의 테라스는 지상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지를 파내 자연 채광을 유도하는 ‘성큰(sunken)’ 구조로 지하 1·2층에도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테라스 공간을 만들었다.

해외에서는 아파트에서도 발코니나 테라스를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건축법 개정으로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면서 발코니와 테라스 공간이 점차 사라졌다. 클리오 사옥 설계를 맡은 건축사사무소 OCA의 임재용 대표는 “인간이 삶터와 일터에서 땅을 밟고 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요즘에는 집이나 사무실에 사람과 자연을 매개하는 공간이 없다. 그 해법으로 모든 층에 테라스를 두는 새로운 유형의 사무실인 '테라피스'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4개 층마다 설치된 큰 테라스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덕에 클리오 사옥에서는 다양한 서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 서쪽으로는 남산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롯데타워가 보인다. 이처럼 엇갈리게 쌓인 독특한 모양의 테라스는 건물의 외관에도 역동성을 부여한다.

실제로 건물을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건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수대교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서울숲 너머로, 왕십리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보면 도로의 선형을 따라 클리오 사옥의 다양한 모습이 포착된다. 서울숲 바닥분수에서도, 뚝섬역에서도 풍경 속에 녹아 있는 건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백색 외관이 뿜어내는 기업철학



화장 전 모습·주변과의 융화 의도

완전한 흰빛 위해 재료 고르고 골라

클리오 사옥은 또 온통 흰색이다. 립스틱과 아이섀도 등을 만드는 색조 화장품 회사의 사옥인 만큼 새하얀 외관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임 대표는 “알록달록한 색을 쓰기보다는 화장하기 전의 기초(base), 즉 흰색의 바탕을 구현하자고 제안했고 이 제안이 채택돼 지금의 외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흰 바탕'이라는 의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재료 선택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흰 재료를 골랐고 사용된 재료의 종류도 최소화했다. 클리오 사옥 외관에 쓰인 재료는 세라믹 타일과 유리, 그리고 유글라스, 이렇게 세 종류뿐이다. 또 ‘가장 흰색’을 구현하기 위해 타일도 고르고 골랐다. 임 대표는 “6개 업체로부터 흰색 세라믹 타일을 구해 현장에 설치해놓고 비교해본 후 가장 흰색의 타일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유리와 유글라스에서도 유리 특유의 푸른 기를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 철분 성분을 빼냈다.

새하얀 외관에는 ‘흰 바탕’이라는 의미도 담겼지만 주변 환경과 잘 융화되기 위한 의도도 녹아 있다. 흰색이야말로 어떤 색깔과도 어울릴 수 있는 중립적인 색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리오 사옥은 고층의 신축 아파트부터 저층의 구축 아파트, 그리고 상가와 숲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 만큼 강한 재료나 색깔로 건물 자체의 주목도를 높이기보다는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단색의 외관을 선택했다.



◆'신의 한 수'가 된 지상 주차장

건축법상 주차장은 용적률서 제외

건축 가능 층 4개 늘려 공간 극대화

이 작품의 매력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주차장이다. 보통 주차장은 지하 혹은 별도의 타워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클리오 사옥은 주차장을 과감하게 지상으로 올렸다. 클리오 사옥의 주차장은 지상 3층부터 6층까지, 총 4개 층에 위치한다. 설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신의 한수’였다. 클리오 사옥 주차장은 지상 3층부터 6층까지, 총 4개 층에 위치하는데 지하 주차장을 지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한 마리도 아닌 무려 세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난쟁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건물이 들어서는 곳의 용적률을 고려하면 클리오 사옥의 최대 가능 층수는 10층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49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서울포레스트’와의 높이 차이가 크게 난다. 난쟁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임 대표는 마천루가 즐비한 시카고에서 해답을 찾았다. 시카고는 암반이 단단해 주차 공간을 지상으로 올리는 형태의 건물이 많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 또 건축법상 주차장은 용적률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건물을 기존 지상 10층에서 14층으로 올릴 수 있었고 지하 두 개층은 사무실로 채워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 다른 이유는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가까운 미래에는 자차를 이용하기보다 ‘로봇 택시’ 등 공용 자율주행차를 이용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지상 주차장을 사무실로 개조해 가용 면적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토끼는 주차장 공간의 쾌적성이다. 임 대표는 “자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차장이 건물의 첫 도착지가 된다”며 “주차 공간도 실내의 일부인 만큼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쐴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