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로 주장하는 사실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증거라도 증거 내용에 허위가 없다면 ‘증거의 위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28일 대법원 제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변호사 A씨가 증거위조죄와 위조증거행사죄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고 밝혔다. A씨는 공무원에게 알선 청탁을 하고 B회사로부터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형사 사건의 변호인이었다. 당시 A씨는 의뢰인이 B사 측에 3억5,000만원을 송금한 자료를 재판부에 양형 자료로 제출했다. 그런데 이 자료는 의뢰인 측 계좌에서 B사 측 계좌로 수차례에 걸쳐 총 3억5,000만원을 송금하고 되돌려받는 과정을 반복한 뒤 송금 내역만 뽑은 자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의뢰인이 양형에서 유리한 판단을 받도록 알선의 대가로 교부 받은 돈을 모두 반환한 것처럼 꾸민 것이다.
검찰은 A씨가 증거 위조 등의 범죄가 저질렀다고 보고 기소했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원심은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증거 ‘위조’의 의미에 관한 A씨의 상고 이유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는 A씨가 법원에 제출한 입금확인증 등 금융자료를 ‘증거의 위조행위’로 볼 수 없고, ‘위조한 증거의 사용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판단은 A씨가 제출한 금융자료는 그 내용이나 작성 명의에는 허위가 없었다는 게 근거가 됐다.
대법은 이번 판결에서 형법이 규정한 증거의 위조는 ‘증거방법의 위조’를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따라서 A씨가 제출한 자료는 허위의 외관을 목적으로 만들었다거나 허위의 사실을 입증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긴 해도 증거의 위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증거 자체에 아무런 허위가 없더라도 허위 주장과 결합하여 허위 사실을 입증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이러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이와 같은 행위를 처벌하는 별도의 구성요건이 없는 한 ‘증거위조’의 의미를 확장해석하는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