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4세로 작고한 고(故) 정상영(81)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창업주로서는 드물게 60여년을 경영일선에서 몸담았던 기업인이었다. 그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8년, 22살의 나이에 직원 7명, 생산 설비 1대로 금강스레트공업(KCC의 전신)을 창업했다.
형인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당시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건축자재 사업에 뛰어드는 길을 택했다. 자동차 공업사를 차린 형과는 전혀 다른 독자 노선을 걸은 것이다. 만우절에 창립한 기업이 거짓말처럼 창문과 유리·석고보드·단열재·바닥재 등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을 "기업인 중 가장 오래 경영 현장을 지켜온 사람"으로 평가한다. 특히 정 회장은 다른 대기업 경영자와 달리 사업 다각화를 이루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사업 한 곳에만 집중한다"는 경영 철학을 고수해 왔다.
다방면에 걸쳐 사업을 키우기보다 한 사업에 집중하는 경영 철학은 핵심 기술 국산화로 이어졌다. 1987년에는 국내 최초로 D램 메모리 반도체를 메인보드에 붙이는 데 사용되는 접착제를 개발하기도 했고, 1996년 물에 희석해서 쓸 수 있는 수용성 자동차 도료에 대한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 2003년부터는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던 실리콘 원료 중 하나인 모노머를 직접 생산, 한국을 독일·프랑스 등 실리콘 제조 기술을 보유한 7번째 나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정상영 명예회장이 현대가 창업 1세대 중 마지막으로 타계함으로써, 범 현대가를 이끌던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며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더 정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