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자 국내 업체들은 선제적인 투자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를 비롯해 미국 미시간, 중국 난징, 폴란드 브로츠와프 등에서 총 12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당장 올해 말까지 생산 능력을 155GWh로 늘리고 오는 2023년 260GWh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 생산 라인을 짓고 있는 30GWh 규모 오하이오 공장도 추가 증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 확장세가 가장 가파르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40GWh 규모다. 하지만 내년 1분기 헝가리 2공장(9.8GWh) 가동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125GWh로 생산 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유럽과 중국·미국 등 전방위적인 증설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당초 SK이노베이션은 100GWh를 2025년까지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이를 수정한 것이다. 삼성SDI는 국내와 헝가리 등에 총 30GWh 규모의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 42GWh로 생산 능력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유럽 배터리 업체들은 LG·SK·삼성 등 국내 배터리 업체 맹추격에 나섰다. 지금까지 유럽 업체들은 국내 업체의 주요 생산 거점에서 배터리를 공급 받았다면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과 손잡고 유럽 대륙 내에서 자체 조달하려는 사례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아직 국내 업체가 유럽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배터리 합작 법인을 설립한 사례는 없다.
독일 폭스바겐은 글로벌 9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궈시안과 손을 잡았다. 궈시안은 중국 칭다오와 난징 등 4개 지역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10GWh 규모인 생산 능력을 2022년 50GWh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폭스바겐·궈시안’ 연합의 생산 능력 확대도 주목을 받았지만 그보다 “중국뿐 아니라 독일과 미국에도 공장을 짓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선언이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중국과 함께 3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유럽과 미국 본토에서 직접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스웨덴 스타트업인 노스볼트에도 투자해 독일에서 공동으로 공장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 푸조시트로엥그룹(PSA)은 ‘배터리 독립’을 내걸고 자국 에너지 기업인 토탈과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시스템산업실장은 “지금까지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구매하는 식으로 전기차 시장에 대응했지만 앞으로는 배터리 기술을 내재화하고 합작 형태로 직접 생산하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자체적으로 합종연횡을 극대화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업체인 지리자동차는 현지 배터리 업체인 파라시스와 손잡고 합작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리차는 지난 2019년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에 합작 법인을 세우기로 했지만 답보 상태다. 업계에서는 “지리차가 LG에너지솔루션 대신 자국 기업인 파라시스를 택했다”는 말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간 글로벌 합종연횡 트렌드 속에서 장기적으로는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와 적기 공급이 가능한 생산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핵심 요소인 전해질이 액체가 아닌 고체인 배터리를 의미한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폭발 위험성도 작다. 선양국 한양대 교수는 “현 단계에서는 니켈 함량을 높이는 쪽으로 중국 업체들과의 기술 차별화에 주안점을 두고 중장기적으로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로 기술 격차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