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방사능을 유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사고 직후 중국 내에서 진행 중이던 모든 원전 프로젝트 심의를 전면 중단했다. 2000년대 초반 프랑스 등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발전시켜 나가던 중국 원전 산업은 이후 2014년 원전 건설을 재개할 때까지 암흑기를 거쳤다. 원전 건설은 중단됐지만 원전 기술 개발은 꾸준히 진행됐다. 2013년 중국광핵그룹(CGNPG)과 중국핵공업그룹(CNNC)이 공동으로 개발한 화룽(華龍)1호는 원전 중단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중국 원전 굴기(일으켜 세움)의 첫 결실이다. 화룽1호는 중국이 자체 기술로 만들어낸 최첨단 3세대 원자로다. 이 원자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설계 안전 기준을 통과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안전성 부문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췄다.
중국 동남부 푸젠성 푸칭시에서 국내 최초로 화룽1호 기술을 적용해 건설한 푸칭 원전 5호기가 판매 목적의 전기 생산을 시작했다고 CNNC가 최근 밝혔다. CNNC 측은 “화룽1호의 성공으로 중국은 외국의 원전 기술 독점을 깼다”며 “중국이 원전 강국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에서 운영 중인 원전은 48기, 건설 중인 원전은 12기, 건설이 예정된 원전은 40기에 이른다. 건설 중인 원전에는 푸칭 원전 5호기처럼 최첨단인 3세대 원자로 기술을 적용한 원전이 많다. 원전 110기가 가동되는 2030년이 되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원전 국가가 된다.
중국의 원전 굴기를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한국의 3세대 원전인 APR1400은 프랑스·일본도 받지 못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받았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 이외 국가에서 NRC 인증을 받은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런 기술력이 탈원전 정책 탓에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며 그 수단으로 원전을 꼽았다. 우리의 탄소 중립 시점은 2050년이다. 탈원전으로는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 보인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