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드는 주문에 풀가동으로 대처했던 주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가 가격을 잇따라 인상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설비 투자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파운드리 업계의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탓에 ‘반도체 공급 부족(쇼티지)’의 문제는 상반기 내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일 전자 업계에 따르면 전력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구동칩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SK하이닉스와 DB하이텍, 중국 SMIC, 대만 UMC 등은 최근 칩 생산 가격을 10~20%가량 인상했거나 올릴 예정이다. 이들은 8인치 파운드리 팹만 보유하고 있거나 8인치와 12인치 팹을 함께 가동하는 기업이다.
현재 공급량이 특히 달리는 곳은 8인치 파운드리 시장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노트북 등 재택근무를 위한 기기는 물론 대형 TV 등의 가전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데이터 센터에 들어가는 전력반도체(PMIC)와 전기차 등에 필요한 차량용반도체(MCU), 디스플레이 패널용 구동칩까지 들쑥날쑥한 수요 곡선을 그리면서 이들 반도체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8인치 파운드리 팹이 ‘귀한 몸’이 됐다.
수 년간 고도로 집적된 반도체 생산 기술이 기업 명운을 결정하게 되면서 삼성전자나 TSMC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12인치 이상의 웨이퍼 생산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상대적으로 이익이 높은 분야가 아닌 탓에 8인치의 생산 비중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코로나19가 8인치 팹에 대한 수요를 예상 밖 수준까지 끌어 올리며 상황이 달라졌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쇼티지가 발생한 부품들은 8인치에서 생산할 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12인치 라인이 파운드리에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극심한 쇼티지에 국내외 파운드리 업체들은 여러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 라인 증설보다는 월 생산량을 늘리는 공정 개선이 우선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파운드리는 12인치 장비를 8인치용으로 개조해 긴급 투입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8인치 팹을 보유하고 있는 DB하이텍 관계자는 “8인치 장비는 신규로 구입이 어렵다”며 “한정된 생산 역량을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공정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빠르게 해소되지 못하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전반으로 공급 부족 사태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파운드리 쇼티지의 여파로 올해 상반기 전자 산업 전반의 생산량이 최대 1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를 증설해도 연말에나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쇼티지 현상은 장기화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부품 공급망을 흔들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