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재정혁신국과 예산실·경제정책국 라인을 긴급 소집했다. 여당이 선별과 보편을 결합한 20조 원대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요구까지 거론하자 재정 여력을 감안한 방어 논리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당일 진행된 비공개 당정청 협의에서 재난지원금 지급 방향을 두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충돌했다. 1시간가량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진 끝에 김 대표는 “피해 계층 맞춤형 지원과 전 국민 지원을 담은 4차 재난지원금을 끝까지 추진하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홍 부총리는 “저는 못 하겠다”고 답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전 국민 지급 문제를 “당장 언급하기는 이르다”며 홍 부총리를 지원했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당정 갈등은 지난해 3월 1차 재난지원금을 논의하던 때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당시 ‘홍남기·김상조’ 대 ‘조정식·윤호중’으로 나뉘었던 비공개 고위 당정청 회의는 2시간 가까이 고성이 오가며 분위기가 격앙됐다. 전 국민으로 지원금 지급 대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정리를 했다.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과의 식사 자리에서 묵묵히 밥만 먹다가 문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어깨를 두드려주자 그때서야 (전 국민 지원금에 대해)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3일 세종 관가에서는 홍 부총리가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보편·선별 지원에 강하게 반기를 든 것이 이례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이번에는 제대로 부총리 직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에 손발을 맞췄던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부총리로 추천한 인물이다.
홍 부총리는 올 3월이 지나면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가 되고 차기 강원도지사나 국무총리 하마평에도 오를 정도로 체급이 높아졌다. 지난해 3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해임을 거론했던 전례도 있고 11월에는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으로 유지하기로 한 뒤 문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겠다고 사의를 표명했다가 반려된 적도 있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간 기재부를 하대했던 정치권에 누적된 불만을 터뜨렸다는 분석도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부터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10억 원 유지 등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마지막에 번번이 소신이 꺾여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정 당국의 입장을 굉장히 절제된 표현으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당정청 삼각 공조가 파열음을 내면서 추경 편성 논의도 어느 정도 난항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결정은 문 대통령 몫이다. 집권 막바지에 접어든 대통령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가 관건이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