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美 조기 긴축 대비해 자본시장 안정성 확보 장치 서둘러 마련해야” [청론직설]

[윤용로 전 외환·기업은행장]

-간접투자시장 신뢰 높여 안정적 투자 기반 구축해야

-대출만기 연장 별개 금융사별 좀비기업 구조조정을

-은행, 예대마진 의존 반성하고 혁신으로 실력 키워야

-거래세 완화로 공급 물꼬 열어야 단기 물량 확보 가능

-상업용 부동산 대출·투자 모니터링 부재로 위험 노출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 3일 서울 종로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조기 긴축에 대비해 자본시장의 안전성을 확보할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 3일 서울 종로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조기 긴축에 대비해 자본시장의 안전성을 확보할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은 금융정책(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국책·시중은행(기업은행장 등) 경영을 동시에 경험한 드문 인물이다. 그만큼 거시경제는 물론 실물에 대한 감각도 남다르다. 현재 코람코자산신탁 회장을 맡고 있는 윤 전 행장은 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예상보다 빨리 긴축 프로그램을 가동할 경우에 대비해 우리 정부도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할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 “정부가 가수요 억제 정책에 집중하다 보니 공급 문제를 간과했다”며 “정책 방향을 공급 확대로 전환한 것은 다행이지만 단기간에 되지 않는 만큼 다주택자 등의 물량이 나오게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관치·정치 금융’ 논란과 관련해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수십 년간 예대 마진에 의존해 장사하는 것에 안주한 금융사도 반성해야 한다”며 “핀테크·빅테크 기업과의 경쟁 속에서 은행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전 행장을 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시장 상황 전망과 정책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는가.

△세계경제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던 차에 코로나19를 맞았다. 백신에 의한 집단면역과 변이 바이러스 대응 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경로도 결정될 것이다. 다만 코로나19 이전부터 진행되던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이 하락하고 기업 설립보다 퇴출이 많아 경제적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 불평등 지표도 악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팬데믹 과정에서 인공지능(AI) 등 비대면 서비스와 결합해 진전되는 것은 좋지만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은 경제·사회적으로 부담이다. 정부로서는 팬데믹 극복과 함께 양극화 문제 대응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정부와 기업·금융사 모두 코로나19 쇼크가 중장기적으로 이어지는 데 대비해야 한다.

-그만큼 긴 호흡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과거 전쟁과 질병의 역사를 보면 그 영향이 굉장히 오래갈 수 있다. 구조적 문제와 겹쳐 정부의 고민이 클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인구라고 본다. 합계 출산율이 1.3명이 되지 않으면 초저출산인데 우리는 2003년부터 1.3명 아래다. 이런 구조적 어젠다를 해결하기 위해 면밀한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하는데 관료 조직이 너무 위축돼 있다. 정치 우선의 사회가 된 탓이다. 기업이 주도해나가고 관료 조직이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기업은 규제로 힘들어하고 정부는 사기가 떨어져 있다. 중장기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관료들이 소신 있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이호재 기자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이호재 기자


-시장의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조기 긴축 전망도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통화정책 전망에서는 오는 2023년 이후에나 기준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식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목표인 2%를 넘어도 즉각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긴축에 나설 가능성도 엿보인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대규모 부양책과 확장적 재정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 유동성 증가로 물가가 오르면서 금리 인상 등 긴축 프로그램을 조기에 추진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도 미국의 조기 긴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텐데.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인상 압박이 커지고 부채가 많은 경제주체를 중심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재정·통화정책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선제적으로 가계와 기업의 부채를 조정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조기 긴축은 자본시장에도 충격을 주지 않을까.

△버핏지수로 볼 때 미국은 거품이 있고 우리 역시 주가 상승 속도가 빠른 것이 문제다. 시장이 투기판이 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주식시장에 진입한 개인 투자자들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 기반으로 유도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유망한 기업 활동에 대한 적절한 자원 배분’이라는 시장 본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주식시장이 발전하려면 직접투자에서 간접투자로 안정적으로 가야 하는데 간접투자에서 사모펀드 문제 등이 생겨 실망이 커졌다. 자본시장을 담당하는 당국이나 금융사가 간접투자 시장의 신뢰를 올리고 개인 투자자들을 유인해 저변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 조기 긴축을 실시하면 예상보다 빨리 쇼크가 올 수 있으므로 우리도 자본시장 안정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은 국가적 문제가 됐다.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주택 시장은 올해도 금리 상승이 억제되는 경로를 유지한다면 강세장이 좀 더 지속되지 않을까 한다. 정부는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을 없애고 전세 시장의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두 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부동산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물론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 너무 집중하면서 공급이 간과됐다. 정책을 바꿔 다주택자나 임대업자들에게 공급의 물꼬를 열어주지 않으면 출구가 없다. 정부가 공급 확대로 정책을 전환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단기간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단기 공급을 늘리려면 기존 물량이 잘 팔릴 수 있게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보유세든, 거래세든 한쪽을 강화하면 다른 쪽은 부담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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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이호재기자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이호재기자


-부동산 경착륙 우려도 나오는데.

△단기적으로는 초과 수요가 있어 경착륙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본다. 다만 장기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가 주택 수요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당국이나 금융사는 급작스러운 충격이 올 때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때 상환 책임을 담보물인 주택으로 한정하는 비소구 대출을 확대하는 방법이나 채무자 주택이 경매 위기에 처할 때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매수 지원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만하다. 미국이나 일본·싱가포르처럼 공모 중심의 간접투자 시장(리츠)을 활성화해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방안도 중요하다.

-주택과 달리 상업용 부동산은 부실 우려가 적지 않다.

△상업용 부동산의 핵심은 상가인데 상당히 좋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가 등 리테일 시설의 임대료는 전년보다 3%가량 하락했는데 실제로 연체가 늘고 공실률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인데 상당 기간 계속될 것 같아 걱정이다. 하지만 대비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상가 대출이나 투자 건전성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없어서 위험하다.

-기업 대출도 걱정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대출 만기를 3월까지 일괄 연장한 데 이어 추가 유예할 듯하다. 하지만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추가 만기 연장이 불가피하지만 하반기에도 코로나19의 충격이 지속되면 어떻게 할지 준비해야 한다. 연장 조치가 종료되면 기업 부담이 커져 부실이 늘고 은행의 리스크로 작용한다. 정부 주도의 만기 연장과 별개로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한계 기업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 사업 재편 지원과 선제적 구조 조정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야 한다. 도저히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되는 기업은 끊어내야 한다. 굉장히 힘들지만 중요한 일이다. 기업은행장 때 기업구조조정반을 만들어 옥석 가리기를 하기도 했다.

-자영업 대출도 부담이다. 여권은 자영업 손실을 보전하는 제도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의 (제도화) 지적도 일리는 있다. 다만 자영업의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시스템이 없는 것은 난감한 문제다. 재정 집행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축통화국인 미국 등과 달라 재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재정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손실 보전 제도화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검토가 필요하다.

-관치 금융에 이은 정치 금융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온다.

△정치 금융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금융사도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 예대 마진 중심의 장사가 수십 년간 계속되고 있다. 과점 이익을 향유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가슴 아프다. 창의와 노력으로 발생한 이익도 아닌데 내놓으라고 할 때 그 요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쉽게 번 돈이 아니라고 말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 우리 은행들은 창구(리테일) 서비스는 세계 최고다. 그런데 은행 직원들도 잘 모른 채 펀드를 팔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고객들은 기본적으로 원금 보장이 된다는 생각으로 은행 상품에 가입한다. 은행 본점에서 가이드라인을 잘 잡아줘야 된다. 핀테크와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 속에 은행업의 비즈니스 정의가 달라지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은행의 실력이 훨씬 올라가야 한다. 은행 경영진은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짠다는 절박한 각오로 향후 몇 년 동안 대대적인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살아 남느냐, 못하느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He is…

195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와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했다. 제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뒤 재정경제원 부동산실명제실시단 부동산실명반장과 재경부 외화자금과·은행제도과장을 거쳐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 2국장과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금감위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기업은행과 외환은행 두 곳의 은행장을 맡으면서 정책과 시장을 폭넓게 경험했고 지금은 코람코자산신탁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김영기 young@sedaily.com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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