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진검승부에 나섰다. ‘기자-국회의원(4선)-전남지사-총리-당대표’ 그 다음 칸은 ‘대선주자’ 이낙연이다. 이 대표는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는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라 오는 3월 9일 이전에 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올라타는 셈이다.
그동안 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 속에 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을 기록하며 이른바 ‘문파’의 지지까지 함께 누렸지만 문 대통령을 지원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당 대표의 위치에서는 오히려 대선주자 날개를 잠시 접어둘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났다.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위기’라고 평가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기본적인 삶 조차 위협받는 ‘대전환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생활기준2030’이라는 국가비전을 꺼내 들고 정면돌파에 나섰다. 정당 차원의 국가비전이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선행보 본격화…신복지제도선언=이 대표는 3일 국회 민주당대표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날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제시한 ‘국민생활기준2030’이 ‘대선주자’ 이낙연에게 가장 힘이 될 수 있는 의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새해 들어 발표한 ‘전직 대통령 사면론’과 ‘코로나 이익공유제’에 앞서는 대선 주요 공약이 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는 “민주당의 비전”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이낙연용’이 아닌 민주당의 것”이라며 “국민 생활에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신복지제도”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정부가 국가적인 과제를 수립하면 당은 보완하거나 도왔지만 국가 전체적인 비전을 정당이 제시한 것은 처음”이라며 “민주연구원도 함께 고민을 했고, 가장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내용인 만큼 미래를 위한 당의 비전으로 내놓기에 손색이 없다”고 자신했다.
‘국민생활기준2030’은 소득, 주거, 교육, 의료, 돌봄, 환경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국민 생활의 최저기준을 보장하고 적정기준을 지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 대표는 전날 연설에서 “만 7세까지 지급해온 아동수당을 만 18세까지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전 국민 ‘상병수당’을 도입하는 한편, 온종일 돌봄을 40%로 높이고, 공공 노인요양시설은 시·군·구당 최소 1곳씩 설치할 방침이다. 2030년 경제적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분야별, 단계별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국민생활기준2030 범국민특별위원회’설치도 제안했다.
◇재난지원금 홍남기 반발에 “결제받을 일 아냐”=문제는 재원이다. 아동수당만 봐도 현재 만 7세까지 매달 10만원씩 지급할 경우 연 2조 2,000억원이 소요되지만 18세까지 확대하면 연간 6조원이 더 필요하다. 이 대표는 “모든 영역의 최저 기준이 우선 나와야 재정수요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재차 재원조달 방안을 물었지만 “일부러 피하려는 게 아니라 지금은 그 단계가 아니다”라며 “분야별 과제를 뽑기 시작 한지 2주가량 됐다”고 대답했다.
이 대표의 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한 4차재난지원금의 재원방안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그는 “육상에 비유하자면 지금은 당정협의를 위한 ‘도움닫기’ 준비단계”라며 “아직 레일에 올라가기 전인데 (재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골인 지점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단지 늦기 전에 충분한 규모의 추경, 이 원칙에는 당정 간에 이의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재난지원금 선별·보편지급 병행 발언이 나온 직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이 같은 해프닝에 도움닫기는 커녕 준비운동도 안된 게 아니냐고 지적하자 “모든 것을 ‘결재’를 받아서 (교섭단체)연설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필요한 만큼의 의견교환은 있었다”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지급 시기에 있어서도 이 대표는 “코로나19 상황을 살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며 “지급일이 언제일지 답하라고 하면 빈수레가 요란한 것”이라고 확답을 피했다. 다만, 이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제안한 여야정 당사자간 협의체 구성에는 “상의해야 하지만 당연히 야당과 협의해야한다”고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증세’보다 ‘성장’통해 재원조달=진정되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상황에서 재난지원금과 함께 신복지 제도로 인해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 대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조세법정주의인데 법률이 개정돼야 증세든 감세든 발현될 수 있는 게 아니냐.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장”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우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중단 없는 성장’이 필요하다”며 “복지에는 돈이 들어가고 돈이 들어가려면 재정이 있어야 하며 재정이 있으려면 쉼 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시스템 반도체,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3대 미래 신산업 육성에 정책역량을 모을 뿐 아니라 한국판 뉴딜 그중 일부지만 탄소 저감을 통해 도약의 기회로 만들 것”이라며 “이를 위해 규제혁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꼭 세율을 인상하지 않더라도 산업이 융성하면 세입이 늘어나는 게 아니냐”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 이익공유제’와 관련해서는 세제혜택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도입이 성패를 쥔 열세라고 판단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협력이익공유제를 만들었던 전문가들과 제도 도입에 실패한 이유를 찾았다”며 “지금 실현시킬 방법으로 세제혜택과 ESG도입이라는 지혜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10%수준인 기업의 출연금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고, 2018년 국민연금이 도입한 스튜어드십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연기금에도 ESG투자를 확대할 경우 그린 뉴딜 실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협력이익공유와 사회연대기금을 합친 넓은 의미의 이익공유의 실현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부동산 대책…“공급부족 우려 상당히 해소”=부동산 시장 대책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이 대표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보다 공급물량이 더 커졌을 것”이라며 “공급부족 우려는 상당히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당정은 4일 전국에 총 85만호의 주택을 공급하는 25번째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공급 물량으로 85만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최대 규모다. 특히 이 대표는 “공급물량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양화에 목말라 하고 있다”며 “집이 없다가 (문제가)아니라 ‘나에게 맞는 집이 없다. 내가 갖고자 하는 집이 없다’ 이 두 가지를 다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 점에서 “이번 부동산대책은 상당한 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집값 안정과 관련해선 “광징히 조심스럽게 다뤄가야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부 부동산 대책과 보조를 맞춰 당 차원에서 주거안정을 위해 출범했던 미래주거추진단의 역할과 활동기간도 확대·연장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정부와 당이 각각 정책을 내놓을 경우)혼선을 줄 것 같아서 ‘변창흠표’ 부동산 정책을 다듬는 데 당이 우선 동참하고 미래주거추진단은 중장기 과제를 수행하는 역할 분담을 하기로 했다”며 “미래주거추진단의 활동기간도 연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미래주거추진단은 오는 12일로 활동기한 100일을 채우고 해단할 예정이었다.
◇공정경제3법·중대재해법 일단 시행…"보완시도 또다른 분란"=21대 첫 정기국회와 1월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은 압도적인 의석수를 바탕으로 공정경제3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같은 입법 과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급하게 추진한 만큼 경영계는 보완입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경제계는 ‘3%룰’(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 적용을 받아 신규 감사위원을 선임해야 하는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는 만큼 시행시기를 최소 1년 이상 유예해달라고 정부·여당에 요청한 상태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시행을 해가면서 보완을 할 때에도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굉장히 어렵게 합의에 이르렀는데 시행 하기 전에 보완부터 이야기 하는 것은 또 다른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2월 국회에서 보완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시행하면서 당 안팎의 의견을 모아가겠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경우도 경제계는 시행 전 보완입법의 필요성을 건의한 상태지만 이 대표는 “입법 취지가 예방에 있는 만큼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이 적용(2024년 1월)되기 전에 산업안전보건청을 신설하겠다”며 “우선 시행령만 개정해도 되는 산업안전보건본부 승격을 7월1일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 대표로서 아쉬웠던 점도 여기에 있었다. 그는 “전형적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한쪽에서는 미진하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나치다고 한다”며 “그 틈을 헤쳐나오는데 양쪽 모두에게 서운함을 드린 것이 아쉽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저도 상처를 입었고 국민들께 아쉬움도 드렸지만 그러나 이해하고 수용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대표는 코로나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대표는 “치료제 사용 승인 여부가 5일 나온다”며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인지 큰 기대를 기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료효과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일상에 긴장완화를 줄지, 혹은 방역에 일시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지 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추월의 시대’ 저자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다독가’로 유명하다.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호남 사람인데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이유가 “책을 많이 읽어서"다. 국무총리 시절과 민주당 당대표 취임 뒤에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꾸준히 독서평이 올라왔지만 지난해 11월29일 《조 바이든, 지켜야할 약속》이후 더이상 게시되지 않고 있다.
3일 국회 민주당대표실에서 가진 인터뷰 도중 그 이유를 묻자 “네 맞아요. 책을 안 읽게 됩니다”라고 뜻밖의 말을 하면서도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당 대표실 책꽂이로 향한 이 대표가 꺼내든 책은 최근 출간된 《추월의 시대》였다. 해당 책은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속 저자들이 50년대 산업화 세대와 소위 386이라 불리는 민주화 세대간의 대립으로 한국의 위상을 제대로 볼 수 없는 현실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이미 한국은 ‘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 과정을 거치면서 선진국 ‘추격’을 끝내고 ‘추월’단계에 와있다는 분석까지 포함돼 있다.
이 대표도 “우리는 추격자가 아니라 선진국들을 추월하는 그런 시대에 놓여있다는 책”이라며 “명사들이 아닌 4,50대 비교적 젊은 분들이 모아서 쓴 책인데 이걸 읽고 이분들에게 연서, 러브레터를 SNS에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이걸 꼭 읽고 싶었는데”라며 “지금 우리에게 추월의 시대라고 교섭단체 연설의 한 대목을 넣은 게 바로 저자들에 대한 저의 러브레터였다"고 때아닌 고백을 했다. 이어 “SNS에 올리진 못하고 교섭대표 연설에 이 책 제목을 그대로 패러디를 한 것”이라며 “'추월의 시대'라는 연설 부분은 이 책 덕분에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저자들은 알 것”이라며 “이 아무개가 우리 책 제목을 썼네 이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힘든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부부가 쓴 책인데 재밌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2일 이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70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두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며 “그리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나라의 하나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추격자에서 추월자로 바뀌고 있다”며 “우리가 따르려 했던 나라들이 우리를 따르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