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영화

[리뷰]'승리호' 한국에도 이런 '잘생긴 SF영화' 있어요





뿌연 흙먼지로 뒤덮인 여의도 63빌딩과 광화문 사이로 우주정거장과 지구를 연결하는 우주선이 출발한다. 2092년 지구는 숨만 붙었을 뿐, 더 이상 어느 생명체도 편안히 살아갈 수 없는 행성이 됐다. 우주 위성궤도에는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UTS가 만들어졌다.



UTS에는 선택받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존재한다. 한국 이름 떡 하니 새겨놓은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선원들은 오늘도 망가진 우주선의 잔해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우주 한복판을 어슬렁거린다.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조종사 태호(송중기), 우주 해적단 출신 장선장(김태리), 갱단 두목에서 기관사가 된 타이거 박(진선규), 간절한 꿈을 가진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유해진)까지. 포지션을 명확히 나눈 이들의 쓰레기 수거 여정은 대부분 승리로 끝내는 듯 하지만, 경쟁자들을 따돌리다 망가트린 UTS 부품값을 내고 나면 또다시 빈털터리가 될 뿐이다.

어느날 사고 우주정을 수거하게 된 승리호 선원들은 그 안에 숨어있던 아이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우주선으로 데려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꼬마가 대량살상무기인 인간형 로봇 도로시임을 직감하고, 이를 거액의 돈과 바꾸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게 된다.




광활한 우주가 배경이지만 캐릭터는 전형적인 한국인들이다. 모두 과거 죽을뻔한 우여곡절을 가진 인물로, 웬만한 위험 앞에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장선장과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태호, 무서운 겉모습과 달리 마음만은 따뜻한 타이거박과, 가볍고 입만 싼 로봇인 줄 알았던 업동이의 반전까지. 쉴 새 없이 싸우다 ‘목적’만 정해지면 화끈하게 달려가는 보통 사람, 친근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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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이 한국인이라는 점은 중반으로 넘어가며 도로시를 지켜야 할지, 빨리 팔아버리고 손을 떼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 선택의 개연성을 입히는 효과를 낸다. 정이라는게 참 무섭다고, 뭔가 이상하고 찜찜한 상황이 해결되기 전에는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이들의 결정은 겉잡을 수 없는 ‘우주대혼란’을 불러온다.

비주얼로 압도하고 출발하는 이들의 모험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우주 SF영화답게 8개 VFX 업체와 1,000여 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다양한 국적의 청소선, 광활한 우주 공간, 화성에 설계한 UTS 등 상상력에 기인한 배경이 기존 한국영화에는 없었던 신선한 볼거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지구와 우주정거장 화성을 비행기 타고 외국 다니듯 오갈 수 있고, 이어폰만 있으면 외국인과 자국어로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으며, 고래잡이 하듯 우주 쓰레기를 작살로 잡아 끌고다닌다. 2021년의 상상력으로 개척된 71년 뒤 우주는 상상하던 모든 것이 구현된 듯 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놀라운 기술은 모션 캡처 기술을 이용한 로봇 업동이의 표현력이다. 로봇의 움직임에 유해진의 목소리를 덧입힌 것이 아닌, 유해진이 직접 연기까지 해 그의 습관적 행동을 적절하게 담아냈다. 덕분에 업동이는 유해진이 아닌 것 같은데 유해진인 것 같다가 중반이 지나면 그냥 유해진으로 보이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다만 선택받은 자와 노동자 계급의 이중구도, 뚜렷한 선과 악, 의도치 않게 지구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등장인물들의 구도와 플롯은 기존 할리우드 SF 영화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도로시가 지닌 반전을 설명하는 부분이 뚜렷하지 않고, 악당의 목적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계관 부족으로 인해 작품은 마블의 권선징악과 닮아가다가 끝내 신파를 거쳐 결말로 간다.

킬링타임용으로 분류되는 우주 SF영화인만큼 뚜렷한 메시지와 견고한 이음새를 기대한다면 몇 번은 뒤로 돌려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화려한 비주얼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액션, 캐릭터의 재미는 확실한 만큼 맥주 한잔 들고 안방극장에서 편하게 즐기기에 좋은 작품이다. 물론 아이맥스로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최상진 기자 csj8453@sedaily.com


최상진 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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