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라데팡스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은 1989년 파리 서쪽 외곽 현대식 상업지구에 가로 108m, 높이 100m의 그랑드 아르슈(La Grande Arche)가 세워졌다. 35층 건물인 그랑드 아르슈의 가운데는 아치 형태의 허공인데 그 크기가 가로 45m, 높이 51m의 개선문과 일치한다. 주변에는 프랑스텔레콤·프랑스전력공사·토탈 등 굴지의 회사들이 포진한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하다. 길에는 자동차가 없고 사람들뿐이다. 프랑스의 맨해튼이라고 불리는 이 신도시는 세계 최초로 보차(步車) 분리 원칙이 적용된 ‘라데팡스(La Defense)’다.



라데팡스는 프로이센의 침략에서 파리를 지켜낸 시민들을 기념한 루이 에르네스트 바리아스의 조각 작품 ‘라데팡스’에서 따온 이름으로 ‘파리의 수호자’라는 뜻을 지녔다. 1958년 라데팡스 개발청(EPAD)이 설립되면서 업무·주거 융복합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개발청은 라데팡스 지역의 건축권을 판 수입원으로 도시화 계획과 인프라 구축 등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지상은 보행자 공간, 지하는 자동차·지하철 공간 등으로 철저하게 분리돼 교통 혼잡 없는 명소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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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약 87만 평)의 절반가량인 약 46만 평 규모의 라데팡스에는 50년이 넘는 개발 기간을 거쳐 현재 글로벌 톱 50위권 중 15개 업체를 비롯한 1,500개 기업, 15만 명이 입주해 있다. 주거 단지에는 2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거리 곳곳에 호안 미로의 ‘거인’, 모레티의 ‘괴물’, 세자르의 ‘엄지손가락’ 등 60여 개 걸작이 예술혼을 뿜어내고 있는 것도 입주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와 거장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83만여 가구의 주택 공급 계획을 약속하면서 공공 주도 성공 모델로 “파리의 라데팡스 등이 있다”고 꼽았다. 서울에는 2025년까지 분당 신도시 3개 규모인 32만 가구 주택을 공공 주도로 짓겠다고 했다. 짧은 기간에 관제의 힘만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다. 50년이 넘도록 숙고와 노력을 거듭한 끝에 이뤄낸 라데팡스의 역사를 제대로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시장을 불신하는 한 그 어떤 부동산 대책도 미덥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문성진 논설위원

/문성진 hnsj@sedaily.com


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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