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는 2030년에 맞춰 ‘국민생활기준 2030’이라는 이름의 신복지제도를 제안했습니다. 당내 대선 주자 라이벌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정책’ 시리즈에 맞서 ‘이낙연표’ 신복지제도 드라이브를 선언한 셈입니다.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 대표가 이 같은 신복지제도를 발표한 뒤 여권 대선주자 간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신경전도 불이 붙는 양상입니다. 이날 이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이 지사의 핵심정책인 ‘기본소득’과 관련해 ‘외국에 선례가 없어 기본소득이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비판을 했습니다.
가만히 있을리 없는 이 지사도 반격에 나섰습니다. 지난 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능한 일을 하는 것은 행정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치”라며 “사대주의 열패 의식에서 벗어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하는 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이 대표를 향해 “사대주의 열패의식”이라고 역공을 한 것인데요. 이 대표가 이번에 선제공격을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례적으로 그는 “(기본소득은) 알래스카 빼고는 하는 곳이 없다”며 “기존 복지 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고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신복지제도에 대한 자신감이었을까요.
제3후보찾는 ‘민주주의4.0’…'국민생활기준2030'주목
이례적인 일은 또 있었습니다. 이 대표 연설 다음날인 3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주의4.0연구원이 '대전환시대, 보편적 사회보호체계의 필요성과 정책대안'이라는 주제로 두번째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연구원은 신복지제도 ‘국민생활기준2030’논의를 중심으로를 부재로 달았습니다. 민주당 싱크탱크가 소속당대표의 교섭단체 연설과 관련해 정책안을 구체화시키고 토론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민주주의4.0은 ‘이낙연-이재명’ 외에 여전히 제3후보를 물색중인 단체로 알려져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기에 따라 “민주주의4.0이 이낙연을 선택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기 떄문입니다.
이런 사실에 연구원도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연구원에 소속된 한 의원은 “당 대표 발표에 대해 가능성과 필요성 등을 점검해보는 수준”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4.0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2.0' 정신과 철학을 이어받아 지난해 11월 출범한 곳입니다. 이른바 ‘친노·친문’ 직계라고 자부하며 ‘이낙연-이재명’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계승할 제3후보를 꾸준히 찾고 있는 연구원이 이 대표의 국민생활기준2030을 주제로 세미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이낙연 신복지에 '비전2030'떠올린 ‘친노’
참여정부 청와대를 거친 몇몇 의원들에게 이 대표의 국민생활기준2030에 대한 평가를 물어봤습니다.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대답들이 돌아왔습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내놨던 ‘비전2030’을 떠올리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쯤에서 눈치채셨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모인 민주주의4.0이 이 대표의 국민생활기준2030을 찬성하겠다고 세미나를 개최한 게 아닙니다. 비전2030은 성장동력 확충과 인적 자본의 고도화, 사회적 자본 확충, 사회복지 선진화, 적극적 세계화라는 5대 국가 전략을 내세웠지만 발표 순간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난도질을 당하며 사실상 사장됐습니다.
비전2030은 1년 단위의 예산인 국가 재정운용 계획을 5년 단위 계획으로 수립하고 그보다 더 장기적인 재정운영계획을 통해 복지 비전과 재정 개혁의 틀을 체계화시킨 국가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주받은 걸작’마냥 외면당하고 조롱받았습니다. 친노 정치인들에게 2009년의 큰일 만큼이나 비전2030에 트라우마가 남아 있습니다. 이 대표가 국민생활기준2030을 발표한 순간 몇몇 의원들은 가슴이 철렁했다고 전했습니다.
2006년의 악몽을 떠올린 것일까요. 악몽을 떨치기 위해 긴급하게 국민생활기준2030을 검점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역대정부 축적의 결과물"
이 대표는 지난 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생활기준2030이 비전2030의 계승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그는 “백지상태에서 하는 게 아니라 역대 정부의 축적에서 나온 것”이라며 “김대중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하고 4대 보험을 정비하며, 복지국가의 기틀을 세웠고, 노무현 정부는 복지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며, 저출산·고령화에 본격 대응하시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 케어, 아동수당 신설, 고교 무상 교육 등으로 복지의 지평을 넓혔다”고 말했습니다.
교섭단체 연설문을 그대로 읊은 이 대표는 “제가 암기하고 있을 정도"라며 “그런 (역대정부의)축적 위에 각 삶의 모든 영역을 맞춰가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복지정책의 연장선장에 국민생활기준2030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이낙연용 아닌 민주당 국가비전"
이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국민생활기준2030’이 ‘대선주자’ 이낙연에게 가장 힘이 될 수 있는 의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새해 들어 발표한 ‘전직 대통령 사면론’과 ‘코로나 이익공유제’에 앞서는 대선 주요 공약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낙연용’이 아닌 민주당의 것”이라며 “정부가 국가적인 과제를 수립하면 당은 보완하거나 도왔지만 국가 전체적인 비전을 정당이 제시한 것은 처음”이라고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무거운 칼을 칼집에서 꺼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 진검승부를 해야할 때입니다. 국민생활기준2030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적극적인 의제설정과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비전2030이 공식적으로 논의 된 것은 2003년 탄핵 정국이 마무리 된 6월 29일입니다. 이후 청와대가 나서 경제 계획과 재정 분야의 전문가 60여명으로 구성된 민관합동 작업반을 가동시켜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 2006년 국민 앞에 완성본을 내놨지만 갖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시간과 공을 들였던 비전2030도 결국 좌초가 된 만큼 ‘국민생활기준2030’에 불안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진검승부의 시작…본격화하는 공격
참여정부 비전2030이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던 배경은 재원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당시 언론은 비전2030을 실현하기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다며 세금폭탄, 허황된 계획 등의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날 이 대표와의 인터뷰에서도 재원조달이 증세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질문을 고집스럽게 이어갔지만 이 대표는 “여기는 많이 미진하다. 더 올려야겠다. 이런 것들을 봐야하는데 그런 이후에 연차별로 계획이 나올 것”이라며 “적어도 금년이나 내년은 아닐 것이니깐 벌써부터 증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놀라운 상상”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진정되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상황에서 재난지원금과 함께 신복지 제도로 인해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 대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조세법정주의인데 법률이 개정돼야 증세든 감세든 발현될 수 있는 게 아니냐.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고 일축했습니다.
다만 그는 “복지에는 돈이 들어가고 돈이 들어가려면 재정이 있어야 하며 재정이 있으려면 쉼 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하지만 교섭단체 연설 이후 언론은 이미 재원조달 방안은 없는 복지정책이라며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비전2030과 달리 국민생활기준2020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10년도 더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래 발언들이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재정 혁신과 복지 정책을 두고 폭넓은 토론을 거쳐 국민생활기준2030의 실천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국민의 복지향상과 경제성장이 같이 가지 않으면 성장도 지속할 수 없거니와 성장의 의미도 없습니다"(2006년 9월20일 사회 서비스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보고회에서)
"국가와 사회가 노후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해야 미래를 믿고 행동하는 국민이 됩니다. 노인들의 복지는 확실히 국가가 보장해야 합니다"(2005년 1월 26일 노인대표 초청 신년 오찬에서)
"아이를 낳아도 두렵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보육 문제가 첫번째고, 두번째는 교육 문제입니다. 2030년을 내다보는 계획 중에 여성들 몫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도 좋아질 것입니다"(2006년 1얼10일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